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엄마가 허무하게 떠난 날은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딱 백일이 되는 날이었다.
백일 상도 차려주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가 엄마의 임종을 지켰다. 그 후 엄마가 떠난 슬픔을 육아를 통해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문제는 혼자 남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녔다. 장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해안 해파랑길을 완주했고, 일본으로 넘어가 조선통신사길을 순례하는 등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녔다. 아픔을 잊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뜨거운 여름에 아버지 혼자서 여행을 다닐 때는 신경이 쓰였으나 직장에 매여 있는 신세라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날 기회는 만들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고. 막연히 아버지와 같이 여행을 가볼까 했던 나는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조금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회사에서 얻은 안식년 휴가 덕분에 멀리 떠나도 될 기회가 덜컥 생겼다. 당시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한국을 떠나 맑은 하늘을 찾아가고도 싶었다.
불현듯 미국에 살던 누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미국은 흔한 여행지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떠나고 싶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 가족과 친척은 유난히 미국과 강한 연결 고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누나도 현지에서 공부를 마친 뒤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친척 사촌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땄고 귀여운 조카들은 미국 국적을 가졌을 정도였다. 나 또한 35년 전 아버지의 유학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네 살 때 미국을 떠났기에 미국 생활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서울에서 쭉 성장했고 미국에는 여행 가볼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은 그저 책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나라일뿐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대학원에 다닐 때였다. 여름 학기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수료해야 하는 과정이 있어서, 방학 기간 일주일 동안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상 첫 미국 방문이나 다름없었는데 미국의 어마어마한 자연 경관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마음속 깊은 곳에 언젠가 꼭이곳을 다시 찾겠다는 다짐이 자리 잡았다. 여러 명소 중에서도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는 사막에서 마주한 거대한 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2007년 거대한 사막길이 나를 바꿔놓았다.당시 졸린 눈을 비비며 차를 몰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앞에는 도대체 몇 킬로미터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긴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사막 위에 곧게 펼쳐진 직선 길은 그림 같았고, 그곳을 질주했던 쾌감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기억 속에서 생생했다. 아버지와의 첫 해외여행 목적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10년 전에 이미 정해진 게아니었을까.
그냥 혼자 떠날까?
혼자 여행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게다가 어린아이가 둘 딸린 아비 혼자서 여행이라니 일급 범죄나 다름없었다. 아내가 허락한다 할지라도 혼자 청승맞게 여행 다닐 자신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가족이 여행 멤버로 거론되었고 누가 가장 적당할지 한 명씩 검증해보기로 했다.
일단 가장 시끄러운 멤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 생태계 최종 포식자이며 가장 활발한 18개월 된 막내딸. ‘엄마 아빠’빼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외계어뿐인 아이였다. 미국 서부의 한여름 더위와 거친 자연 속으로 천방지축 딸내미를 데려가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래. 딸, 넌 패스.
우리 가족 들
그다음으로 옆에 앉은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아내에겐 휴식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올해가 마침 결혼 10주년이라 이론상으로나 서류상으로 완벽한 여행 동반자였다. 하지만 아내는 육아 휴직을 막 끝내고 회사에 복직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아내의 휴가 일수는 단 5일뿐이었다. 미안, 여보.
마지막으로 장난감 팽이를 요란하게 가지고 노는 첫째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여섯 살 남자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상상만 으로도 버거웠지만 호기심도 샘솟았다. 둘이서 멋지게 미국으로 향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우리가 미국 서부를 점령하고 귀국할 수는 있을지, 과연 이 녀석이 최고의 여행 파트너가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들 하나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그러고는 갑자기 아 들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강제로 소환되었다. 아버지 혼자 여름휴가를 보내게 두는 것도 내키지 않은 데다, 미국을 잘 아는 ‘지식인’이 동행하면 여행의 품격이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합류하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포함된 남자 셋, 삼대라는 묘한 조합을 완성할 수 있었다.
2018년 1월, 아버지를 섭외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어떻게든 여행은 떠날 참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아버지를 찾아가 여행을 제안했다.
“아버지, 올여름에 계획 있으세요? 저 안식년 휴가가 있는 데 같이 여행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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