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아버지, 같이 가시죠. 손주랑 같이요. 재밌지 않을까요?”
단번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뒤늦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리 차가웠다.
“어, 이번 여름 알래스카에 가볼까 하는데 어쩌지?”
“알래스카요?”
#출처_인터넷. 우리가 생각하는 알래스카는 이런 곳 아닐까?
‘알래스카? 얼음 둥 둥 떠다니는 북극에 간다고? 거짓말이야, 진짜야? 어떻게 알래스카를 가려는 거지? 같이 가기 싫다는 뜻이네.’
고민 끝에 제안했으나 냉랭한 답변이 돌아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버지의 거절은 그 파장이 생각보다 컸다. 아버지에게는 알래스카는 물론이고 북극점으로 탐험을 떠나고도 남을 체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추진력의 사나이인 아버지는 홀연히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잦았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아버지 전화를 받고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보세요.”
“지금 공항이다.”
“네? 어디 가시는데요?”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유럽 북서부 노르웨이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끝자락을 지나 바다 너머에 있는 섬나라 아닌가. 그러한 이역만리라면 큰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홀연히 다녀오곤 했다. 소리 없이 가까운 일본에 여행을 다녀온 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심지어 며칠간 연락이 두절되어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었다.
“어디세요?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니, 옐로나이프라고 아나?”
“옐로 뭐요? 거기가 어딘데요?”
“캐나다 북쪽에 있는 도시다.”
“캐나다요?”
“오로라 보러 왔다. 여긴 영하 35도다. 연락 잘 안 되니 한국에서 보자.”
# 옐로나이프는 캐나다 북부의 한 도시이다. 멀다. 그런데 다녀오셨다. 실제 가보면 오른쪽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래스카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충분히 현실이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삼대의 낭만은 개뿔, 서부여 안녕’하고서 여행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 허탈했다. 여행 계획을 다시 짜볼까 하고는 구글 지도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습관처럼 미국 서부 지역을 찾아 들어갔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일 당장 여행을 떠날 사람처럼 클릭을 계속했다. 봐도 봐도 미국 서부에 미련이 남았다. 구글 지도를 탐닉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 미국은 못 가겠지…….’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집에 적막이 흘렀다. 아버지는 내게, 나는 아버지에게 불편한 기색을 느끼고 있었다. 30여 분쯤 지났을까. 우리 부자는 계속 말이 없었다. 나는 몽상가처럼 구글 지도 속을 방황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펼쳐둔 구글 지도를 보고 있는 듯했다. 어깨 너머로화면을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건 미국 종주 지도 아니에요?”
# 그때 보고 계셨던 화면을 다시 복원했다. 미국 종주다!!
불길한 기운이 몰려왔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텍사스의 한적한 마을 길을 걷고 있는 지친 여행자의 이미지가 스쳤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여행을 함께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환희 섞인 마음도 있었다. 미국 종주 지도를 그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자니 ‘고생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본능인 걸까, 나도 아버지께 배운 대로 경상도 남자 코스프레를 하며 모른 척했다. 그런데 한술 더 뜨셨다.
“2주면 미국 종주하겠네.”
‘차라리 알래스카를 같이 가자고 할까?’ 마치 면접장의 대기자처럼 긴장한 채 10여 분이 흘렀다. 계속 모른 척하고 있다가 모니터 화면을 슬쩍 흘겨보니 아버지는 다른 경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 서부 종주 루트 개발하시던 화면은 대충 이런식이었다.
“서부는 사흘이면 다 되겠네. 그래 가자. 누나한테도 연락 해봐라.”
갑자기 협상이 타결되었다. 침 튀기는 설전도 없었고 수학적 증명도 없었으며, 빈틈없는 논리로 서로를 설득하거나 방어하는 과정도 전혀 없었다. 세기의 협상은 미국 서부로 떠나는것으로 결론 났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지만 어색한 사이이기도 한 아버지와의 알래스카 해프닝은 ‘밀당’의 일환으로 이해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여행이 벌써 시작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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