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안부

서글프다는 단어를 해부해주세요.

by Sabina

먼데이키즈의 가을안부를 좋아한다고 했다. 5회의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다. 여름내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왔던 그녀의 마스크가 다소 두껍다고 느껴지는 검은색 마스크여서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그녀가 넘기는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차는 것이 보이는데 그녀는 검은색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10대 아이들을 30년을 가르쳤다. 그 제자가 결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나에게 과외를 배울 때까지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10대의 제자와도 드라이브를 했고 20대가 된 제자와도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 그때마다 내 차안에 흐르는 음악의 DJ는 제자들이었다. 날씨 만큼 변덕스러운 음악을 틀기도 하지만 나를 닮아있는 아이들의 선곡은 대부분 감성적인 팝송이나 가요였다. 나는 아이들로 인해 팝송을 알았고 가요를 알아갔다.


서글프다는 뜻이 뭐예요?


10대들은 과외를 하는 선생님이 하필이면 24시간 무슨 이야기도 다 들어준다는 상담하는 사람이라 관계가 깊어지면, 가볍게는 우울하다고 했고 힘들다고 했고 미간까지 찡그린 날에는 죽고싶다고 했다. 가끔 서글프다는 말을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눈을 제대로 봐야 했다. 서글프다는 뜻은 아이스크림이나 달달한 라떼 한 잔 사주는 것으로 끝나는 다소 뻔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제자는 유난히 긴 밤 소리내 우는 법을 잃어버린 홀로 걷는 아이유의 노래를 닮은 서글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전적인 지식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쓸쓸하고 외로워 슬프다는 뜻과, 비도덕적인 사건을 보면 서글퍼진다는 상황적 예시까지 찾아보고 제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을 단순하게 치부해서는 안된다. 아이라고 규정하기에는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고,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하는 그 범주가 어른의 세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그 환경을 견디고 처리하기에는 학교와 부모의 지원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아이의 서글픈 이야기를 첫사랑을 만나 프롤로그로 장식하는 20살이 될 때까지 들었다.



서글프다는 뜻이 뭐예요?


먼데이키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들의 노래 [가을안부]라는 노래를 아냐고 물었다. 노래를 같이 듣자고 말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에 공감해달라는 것이다. 굳이 가사까지 보여주면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는 것은 내 마음이 지금 그렇다는 것이다


어떠니 잘 지냈니 지난 여름

유난히도 힘에 겹더라 올핸

새벽녘엔 제법 쌀쌀한 바람이 어느덧

네가 좋아하던 그 가을이 와

사랑도 그러게 별수없나 봐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처럼 변해가

그리워져 미치도록 사랑한

그날들이 내 잃어버린 날들이

참 많이 웃고 울었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

네가 떠올라 밤새

참 아프다 네가 너무 아프다

너를 닮은 이 시린 가을이 오면

보고 싶어서 너를 안고 싶어서

가슴이 너를 앓는다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하고 할 말은 많으나 침을 삼키고 숨고르기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때가 깊고 숨이 깊고 정이 깊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받아낸 날, 상담 일지에 그녀의 이야기를 다 쓰고, 그녀가 바라보는 서글픈 대상에게 그녀의 할 말을 대신 전해주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것이 어머니 탓이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 한 것은 자기 탓이라고 했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것과 일부러 슬픈 노래를 골라 듣는 것은 꿈에만 나타나는 첫 사랑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서글픔의 원인을 단 몇 줄로 표현할 수 없다. 그녀의 검은 마스크 뒤에 숨은 우울은 그녀가 성장하면서 줄곧 거부당한 어머니의 강한 목소리 때문이었고, 그 어머니와 화해하는 의식을 치를 때조차도 그녀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말이 진중하고 호흡이 깊은 그녀는 마스크 좀 벗어라 호통치는 어머니 앞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제는 제가 하고싶은 대로 살 거라는 치유의 행동으로 보였다. 봉인 된 마음을 열고 그때 왜 그랬냐고 울먹이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샛길 들목에서 노을을 보면 쉬어 가겠구나, 이제는 혼자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갈 수 있겠구나, 이제는 아침마다 다른 빛깔을 내는 자연을 오롯이 누리겠구나...


서글프다는 것은 힘들고 아프고 가끔은 혼자라고 생각되는 순간에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갖지 않아서 오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힘들고 그냥 우울하고 그냥 외롭다는 것은 서글프다는 것이고, 서글프다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그 감정의 이유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해서 오는 것이다. 애도라는 것은, 너는 문제가 없어...그럴 수 밖에 없었잖아...너는 참 잘 살았어...그렇게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한달이 지났다. 붉은 장미를 닮은 그녀는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왔다. 어느새 검은색 마스크는 그녀의 원피스를 닮은 패브릭 마스크였다.


아, 하염총총


그녀가 마스크를 벗고 하얀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이제는 뭐든 다 잘할 거 같아요."


아, 하염총총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상담을 하다보면 그렇다. 잘 살기 위해 나의 손을 떼고 나를 찾지 않는 그 시간이 찾아오면 이미 나에게 기울어진 그녀의 마음을 가끔은 그냥 그저 붙잡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노래 알아요?"


내가 그녀에게 건넨 장필순의 노래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 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 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쯤에 또 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힘겨운 어제를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이렇게 내 맘이 서글퍼 질때면 또 다시 살아나



그녀가 물었다.

"선생님 서글프세요?"



그녀는 잘 살고 있겠지

가을이 되니 그녀가 궁금하다.

기울어진 마음을 들킬까, 오랜만에 [가을안부] 노래를 틀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문밖으로 나가자..."


KakaoTalk_20210903_131629114.jpg

https://youtu.be/2GWFpQbaL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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