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Prologue

늘 마음이 무너지는 당신을 위해.

by Sabina
불안은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살기 때문에 옵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긴 머리카락으로 또 다시 얼굴을 가렸지만 그녀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보였다. 불안하고 그로인해 우울했다. 불안과 우울이 같이 온다는 것쯤은 '코로나 블루'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제 다 알고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오래 버텨서 살아갈 힘이 없다고 말했고, 상담하는 사람과 내담자 사이의 관계를 넘어, 그녀를 토닥이고 싶었다. 그녀의 손 위에 나의 손을 포갤 때 눈물 방울이 나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살아 온 이야기를 이제 막 시작해야하는데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마스크 뒤에 숨어있는 우울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미국 레드우드국립 공원에는 '하이페리온'이라고 불리는 삼나무가 있다. 나무의 키가 11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진 '하이페리온'은 아직까지 한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제네럴 셔먼’은 밑둥이 14m로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이며,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수명이 3천 년이 넘고 껍질이 30인치가 넘어 산불이 나도 타지 않고, 병충해도 들지 않는다고, 제자 수업을 위해 함께 찾아 본 나무 사진을 바라보면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취해 있던 그날, 가슴 떨리는 문장을 접했다.



슐만의 숲에 있는 '브리슬콘' 나무는 가장 오래 버팁니다. 척박한 돌땅에 자리를 잡고, 껍질이 두껍지도 않고, 키가 크지도 않고 볼품없는 그러나 그 어떤 자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강한 '브리슬콘'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므두셀라' 라고 부릅니다

노아의 할아버지이며 969세까지 장수를 누렸다는 구약성서의 인물, 므두셀라 이름을 받은 그 나무는 사실,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서 긴 뙤약볕을 받아내며 독야청청 곧게 기립하는 소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힘든 인생을 오롯이 견뎌내며 가끔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몸통을 비틀어서라도 이겨내는 그래서 '나 좀 봐주세요' 속울음하는 민낯이 다 보이는 연약한 나무였다. 나에게는 말이다.


상담을 하면서 아픈 마음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내담자가 돌아가고 나면 어느새 나는 '므두셀라' 가 되었다. 강한 척 살아가면서 아무도 없으면 속울음이 차올라 "그렇게 천천히 살아내는,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오래 버텨서 민낯이 다 들켜버리는 '므두셀라'가 되었다.


그녀는 열일곱살부터 죽음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림자 너머로 엄마가 사라지고 매일매일이 지옥같다고 느껴질 때 동화보다도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다시 회복해 줄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매일 밤 십자가 앞에서 울면서 기도했던 연약한 자신을 품어 줄 유일한 남자라고 그래서 참 쉽게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못할 게 많은 남편의 그늘에서 자신과 자신의 딸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마스크 뒤에 숨은 우울은 마스크를 뚫고 더운 입김을 뿜어내고, 눈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녀의 눈만 보고 있는데, 그녀는 눈으로 말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딸이 이제 열일곱인데, 매일매일이 지옥같아서 집을 나가고 싶다고, 그래서 더는 버틸 힘이 없어서 찾아왔다고 말하면서 눈으로 울었다.

그녀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다시한번 몸을 비틀었다. 다시 척박한 땅에서 몸을 틀어서라도 그녀에게 곁을 내주고 그녀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다시 강해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다시 '므두셀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당신'과 '나'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사랑의 언어로 뛰어넘고, '늘 무너지는 당신을 위해 도움을 드릴게요' 주문을 외우면 어느새 한 몸이 되어버려 내담자의 고통에 내가 섞어들어가는 시간들, 나는 그 시간을 살아왔다. 왜 그래야 했을까.


지긋지긋하게 풀어냈던 나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첫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에 있고, 상담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돈을 혼자 벌어야하는 장애인이면서 이혼녀라는 이야기는 네이버 검색 만해도 나오는 '황정미'라는 사람인데, 왜 나는 여전히 '므두셀라'가 되어서 강한 척을 해야 할까.


사실은 달아나고 싶고 싶은데, 숨어 지내고 싶은데, 결국은 버티는 힘으로 그 힘이 구심력이 되어서 용수철 튀듯 다시 살아지는 어쩌면 남루하고 비루한 인생인데, 나는 왜 내담자들을 내 살처럼 보듬어주고 내 품에 안아줄까. 아마 빙글 빙글 돌아가는 쳇바퀴 인생에서 신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강한 원심력을 유지하면서 '므두셀라'처럼 오래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뚱이를 흔들어대는 고진 바람에도 잘 견뎌내는 산으로 주저 앉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늘 무너지고 늘 쓰러지는 누군가가 내 이름 석자를 기억해서 달려오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24시간 숙식을 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품어주었던 7년의 기록, 서툰 관계와 잘못된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나약한 여성을 위한 첫 소설, 그리고 이제 늘 무너지는데 버텨야 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 번째 책을 준비한다. 여전히 민낯을 들키는 상담자로, 산처럼 품어주다가 내담자가 돌아가면 울어버리는 엉켜버린 인생을 살고 있지만, 다행히 마스크 뒤에 숨어있는 우울을 너무 쉽게 읽고 그 우울을 안아주는 마음이 아직도 있기에 '코로나 블루'가 장기화 되어서 우울이나 불안의 감정이 분노로 표출되는 '코로나 레드'는 막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책으로 다시 등대의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늘 무너지는 마음 끝에 죽고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벗어 홍조로 달아오른 나의 뺨을 보여주면서 말할 것이다.


내 말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당신 손위에 나의 손이 포개지듯, 나의 글이 당신 마음에 포개지기를 .


내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서 그들의 삶이 개나리로 진달래로 목련으로 피어나는 '봄'이 되기를 소망한다.



송도, 작가의 공간에서 sabina 황 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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