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
[일러두기:본 소설은 실화에 근거를 둔 허구입니다. 창작 소유권은 황정미에게 있습니다]
그녀에게 고백했다. 빽빽한 도서 열람실에서 네 번재 남자를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말했다.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냐고 공감보다 비판을 하는 그녀에게 다행히도 들었던 것과 보았던 것을 풍경처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말과 나의 말 사이에 서걱거리는 마찰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
공감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고 내 사랑을 소개하는 것이 더 쉬운 사람이다. 그녀의 말과 나의 말 사이에 그늘처럼 침잠한 단어만 오고 가고 가끔 사랑하기 좋은 나이라고 치켜 세우는 말이 가시처럼 내려 앉을 때, 식어가는 커피를 리필했다.
대개는 그렇다.
-잘 될 겁니다.
-뭐가요?
-그걸 모르겠습니다.
-잘 살 겁니다.
-누가요?
-우리는 잘 살 겁니다.
-어떻게요?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서걱거린다는 거지.
"씨발년아!"
욕은 다 내 이야기인 것 같아 그 자리에 서게 된다.
알지도 못하는 소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그 자리에 바로 서게 된다. 미어캣처럼 멈추어버린 몸짓은 의문의 남자가 욕하는 대상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알고, 그 남자가 골목길을 다 지나가야 언 몸을 풀어버린 곤 했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떠도는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들려주면 주고 받는 말이 어느새 피곤해졌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들어주는 대상에게 욕설을 담은 입을 기대했나? 욕설을 담은 눈빛을 기대했나?
마조히즘은 아닌데, 공감보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병적인 심리가 발동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지, 오히려 욕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변방 그늘진 자리에서 오래 버텨서 그런가.
기억의 비만이 부풀어 간다.
표정없던 사람이 웃어주기만 해도 이태리 양과자 집에서 유혹하는 빵 냄새가 났다. 그녀에게 말했다. 그 남자가 그런 사람이라고.
오물거리는 입에서 초콜릿 냄새가 나고 살짝 걸친 미소에서 고향 같은 빵냄새가 난다고.
그러면 그녀는 피곤하다고 했다.
서걱거리는 마찰이 끝나간다.
-너는 잘 살 거야.
-어떻게?
-그치, 그게 문제지...
아홉수를 갓 넘긴 마흔의 그녀가 말했다.
-한 번 보자.
-같이?
-그러지 뭐..
표정없는 남자는 그녀를 이해할까?
표정없는 남자를 네 번째 남자라고 소개하는 나는 그 남자와 사랑할 수 있을까?
나도 이제 막 아홉수를 넘긴 마흔인데 말이다.
오늘도 여러 겹의 따옴표 속에서 기억이 부풀어 간다.
어쨋든 맨드라미가 가득한 도서관 그 곳에 가면 표정 없는 남자, 그가 있다.
[네이버 카페 힐링스페이스에서 연재했던 소설입니다. 퇴고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