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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09. 2019

(책리뷰)속죄 - 이언 매큐언

* 모든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마지막 장 몇 줄의 단어만으로 500페이지가량을 끌어왔던 이야기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리고 에필로그 마지막 단 한 페이지만으로 소설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내공이 이언 매큐언이 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인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1부는 주인공인 탈리스가의 브리오니, 세실리아 그리고 로비 세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빌딩과 1930년대 영국 상류층의 저택과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로 구성된다.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내용이 디테일함을 넘어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원죄가 어떤 식으로 잉태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는 중요한 장이긴 하지만 영국인이 아닌 이상 소설 속 배경을 그려내기가 어렵고 반복되는 묘사가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입체감과 여운으로 작가가 거대한 도미노 아트를 하기 위해 블록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쌓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큰 줄거리만 보면 단순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을 마지막 단 두줄, 1,2,3부 모든 내용이 브리오니가 작성한 내용이라는 것으로 뒤집어버림으로써 독자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거짓 진술로 로비의 삶을 파괴해버린 브리오니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거짓말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죄악의 수단이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충격을 준다는 것은 우리 모두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고 눈이 아프게 보아온 동화에서 지겹게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작가는 거짓말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다.라고 1차원적으로 이야기를 맺지 않고 독자에게 깊은 여운과 속죄라는 의미, 그리고 소설가로서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한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로라는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 또 다른 가해자이다. 진범인 폴 마셜과 결혼해 80세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부부는 사회적으로 명망도 높고, 다양한 자선사업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 사건 이후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없지만, 로라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불안한 상태였으며, 폴의 재산이 막대하다는 점, 로라 역시 브리오니와 비슷한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캐릭터라는 점에 의거하면 폴은 범죄를 은닉하고 로라는 부유한 진범 폴과 결혼함으로써 둘 다 브리오니의 원죄에 침묵한다. 그렇다면 마셜 부부는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속죄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진범과 결혼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로라의 속죄로 볼 수 있을까. 소설에서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아 독자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정적인 죄를 저지른 브리오니는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전쟁 상황에서 간호사가 되며 자신이 가진 재능인 소설을 통해 삶 전체를 속죄에 바치고 있다. 그녀가 속죄하기 위해 써낸 소설은 마셜 부부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출판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브리오니의 시선에 의한 정황적 내용들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답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된 로라의 모습과 대비되어 오히려 죄를 저지른 브리오니가 더 속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듯이 보인다.




결국 속죄란, 죄를 저지른 인간이 스스로 얼마나 죄책감을 지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게 아닐까. 거짓말로 로비를 파멸시킨 브리오니, 전장에서 많은 시민과 병사들을 뒤로하고 살아 돌아온 로비, 가족들과 모든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세실리아, 침묵으로서 범죄에 동조한 마셜 부부와 그들의 노년의 삶, 가정부의 아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했던 잭 탈리스의 사건 전과 이후의 태도,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 모두가 스로가 저지른 죄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속죄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악의 평범성, 원죄에 대한 내용을 다룬 작품은 흔하면서도 어렵다. 우리가 잘 알면서도 외면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이언 매큐언은 속죄라는 가치를 통해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깊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브리오니라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말한다.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상상이라는 연막을 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쓰는 것이 소설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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