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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Apr 23. 2019

(책리뷰)섬 -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로 유명한 책,


장 그르니에의 철학적 사유가 깃든 에세이로, 다소 예민한 느낌의 문장들과 관념적인 내용이지만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알베르 카뮈가 왜 이 책을 읽고 시대를 넘어 길이길이 회자되는 추천사를 쓸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법한 강렬한 통찰과 문장들이 대단하다.


스승과 제자이면서 동시에 친구였던 관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전의 앞면을 바라보며 사는 세상 속에서 뒷면을 오롯이 바라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내가 느꼈던 내면의 뜨거운 감동과 충격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본 생각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 속에서 축적한 경험, 사유를 기반으로 한 ‘주파수’가 어느정도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동전의 뒷면을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뒷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마치 초콜렛을 모르는 사람에게 초콜렛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처럼, 상실을 모르는 자에게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처럼. 여타 예술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이러한 주파수를 가진 이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며 같은 작품의 감동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마치 삶 속의 작은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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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에게 장 그르니에의 섬이 있었듯이 내 삶 속에서 큰 울림을 준 책들이 있었을 것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동전의 뒷면을 바라보기 위해 계속해서 책을 읽을 것이고,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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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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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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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0. 달은 우리에게 늘 똑 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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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 인생 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어서 어떤 상태를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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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우리 예술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이다. 이것은 예술을 더럽게 만들기 위한 고의적인 노력을 드러내 보인다. 따라서 인도의 어디를 가건 상징에 의하여 모양이 일그러진 아름다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무엇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름다움이란 너무나도 빈곤한 귀중품이어서 그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어디서나 성스러움의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낙인을 찍어 그것을 파괴한다…. 예술의 절정은 예술을 무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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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7. 나는…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 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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