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은 인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하지만, 치고 올라오는 힘을 발산하게 한다. 이때 에너지는 폭발적이다. 밑바닥을 경험한다는 건 절망의 벽에 갇혀본 것이며, 치고 올라오는 순간 벽은 허물어진다.
2016년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이른 아침인데도 외래는 활기를 띤다. 환자들을 맞기 위한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 곳곳에서 들리는 경쾌한 음성은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잊게 해 준다. 그러다 곧 외래 시작을 예고하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병원임을 자각한다.
‘오늘도 많은 환자들이 이곳을 오겠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는 이들도 있을 거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선다는 건 축복이야.’
대학병원은 묘한 곳이다. 누군가는 첨단 의료기술로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최신 진단 설비로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외래에서 오가는 이들을 보면서 환자를 구분지을 때가 있었다. 정기적인 진료로 방문하는 비교적 가벼운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 중병인데 치료 경과가 좋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 자신의 병력에 새로운 병을 막 추가한 이들. 대학병원 외래는 감정을 감추기가 힘든 곳이다.
이날도 인터뷰이를 향한 호기심이 나를 각성시켰다. 전문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이들의 성공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건 고단했던 언론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줬다. 지금도 앞으로도 열정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건 이들에게 받은 영향 때문인 것도 있다. 치열하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알기에.
정형외과 외래 진료실로 향하는 길. 나와 영상취재팀, 병원 홍보팀 직원은 이날도 원팀이다. 인터뷰이만 합류하면 된다.
“기자님, 우리 교수님 이발하셨어요. 앞에 가시네요. 촬영이라서 신경 쓰신 듯요.”
홍보팀 직원이 웃는다. 몇 발짝 앞에 80년대 이발소에서 자른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남성이 걸어간다. 아주 짧고 단정하다. 촌스럽긴 해도 묵직한 성실함이 느껴졌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교수님, 이쪽은 오늘 취재하시는 기자님이시고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지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는 독일 군인 같았다. 표정도 자세도 말투도 경직됐다. 촬영 때 저 목소리 톤이면 어쩌나 걱정됐을 정도로.
우리는 진료실에서 촬영을 준비했다. 교수는 긴장했다. 40대 초반 깔끔한 인상의 그는 얼음이 돼 버렸다. 이럴 땐 웃겨야 한다. 그래야 촬영을 잘 끝낼 수 있다. 실없는 농담을 시작해야 했다.
“와, 머리 한번 시원하게 깎으셨어요. 어디서 깎은 거예요? 돌려 깎았네. 까놓은 밤 같아요. 알려주세요. 저도 이발해야 하거든요.”
웃는다. 피식 웃더니 터졌다. 다행이다. 독일 군인에서 독일 스포츠 선수로 바뀌었다.
나는 인터뷰 전 이메일로 사전 취재를 마쳤고 관련 내용을 숙지한 상태였다. 그래야만 취재 현장에서 파악한 것들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것들을 물어볼 수 있다.
그는 나를 놀라게 했다. 추가 질문들을 예상해 이에 관한 답변을 만들어 문서로 정리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를 준비해 놨다.
“제가 이런 걸 질문할지 어떻게 아셨어요?”
“기자님 쓰신 기사와 리포트, 진행하시는 생방송까지 다 봤어요. 보니까 흐름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주고 받은 질의서와 답변서에서 빠진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세요?”
“아뇨. 감사하죠.”
“저 때문에 오시는데, 이렇게라도 해야죠.”
그동안 만난 명의들 모두 엄청나게 성실했다. 그의 성실함은 결이 달랐다. 상대가 원하는 니즈를 파악해 먼저 제시하는 것, 이건 일할 때 내 방식이다. 던져주는 것 외에, 먼저 내가 나서서 준비하는 것. 닮은 점을 발견하니 인간적인 관심이 생겼다.
촬영을 잘 마치고 병동으로 이동했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가 복도에서 환자를 부축하며 걷는 연습을 도와주고 있었다. 한 손으로 환자 어깨를 다른 한 손으로 환자 손을 잡았다. 그의 두 발은 환자 보폭에 맞춰 내딛는다. 엄마가 막 걷기 시작한 아이 곁에서 함께 걷듯이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대견함이 읽히듯 그는 자신이 이끄는 대로 따라준 환자를 향한 고마움과 뿌듯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환자 인터뷰 때 의사는 대개 동행하지 않는다. 교수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 취재팀은 잠시 쉬었는데, 그는 그 사이 병실로 와서 환자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실로 들어가 환자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교수님, 회진 시간 외에도 병실에 자주 오세요?”
“말도 마요. 틈나는 대로 와서 물어보고 자세 살펴주고 운동도 도와줘요. 명의야, 명의!”
“명의요? 수술을 잘해서요?”
“진짜 의사야. 처음엔 수술 잘하신다고 해서 여기 왔어요. 수술도 잘 됐고요. 교수님께서 환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해요. 어디가 불편하냐,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해요.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등을 만져주면 눈물이 나. 자식도 그렇게 살갑게 못해요. 우리 교수님 촬영한다고? 잘 찍어줘요. 명의야.”
“수술 결과 만족하시겠어요?”
“당연하지. 말도 마요. 난 그동안 꼬부랑 할머니였어. 교수님이 꼬부라진 내 허리를 쫙 펴놨어. 저 분 때문에 나는 다시 태어났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노년의 여성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녀는 척추관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후 보조장치를 허리에 착용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그녀의 허리는 꼿꼿했다.
옆에 여성 환자가 끼어든다.
“난 이런 의사 처음 봤어요. 허리 수술할 때 엎드리잖아요. 얼굴이 수술 침대에 베개에 닿게 되잖아요. 글쎄, 레지던트 선생님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교수님이 수술하다가 중간중간 환자 얼굴에 너무 압박 가해지지 않도록 조금씩 각도를 바꿔줬대요. 각막 손상될까 봐요. 수술 시간이 오죽 길어. 일일이 그걸 다 확인했다고 하네요. 나 아는 사람은 다른 병원에서 수술했는데 각막 상했다잖아요.”
“대단하시네요. 의사분들이 보통 자기 진료과 아니면 잘 살피기 쉽지 않거든요. 허리 수술 집도하시면서 각막까지 신경 써 주시고 대단하시네요.”
다른 환자들도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가 들어왔다. 대부분이 노년 여성이었는데 아이들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어머니, 아직은 막 걸으시면 안 돼요. 조심하세요.”
그는 독일 군인이 아니었다. 이 스위트함이란 뭘까. 그에게 귀신이 씐 것 같았다. 빙의다. 너무 놀라 후배들을 바라봤더니 그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한테는 쌀쌀맞게 대하더니. 환자들한테는 아들처럼 대하네. 아들이야. 아들.’
환자들과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발도 만져주면서 뭔가를 당부하고, 등을 쓰다듬으면서 힘내라고 한다.
권위자들과 만나면서 가끔 불편했을 때 있었다. 일부이긴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친절한데 환자들에게는 선을 너무 긋는다고 할까 거리를 둔다고 느껴질 때였다. 그는 반대였다. 기자에게 경계를 풀지 않았고 환자들에게 무너졌다. 멋쟁이.
그를 섭외하기 전 수술 실력이 훌륭하고 논문도 열심히 내는 실력자가 있다고 전해 들었고, 그의 논문을 일일이 사이트에서 다 찾아봤다.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환자들을 통해 얻은 임상 경험을 토대로 통계를 내고 이 분야 의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의미를 찾아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알려진 명의들 외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언론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현명한 자는 자신을 더욱 발전시킨다. 의사의 발전은 곧 환자들의 생명, 건강과 직결되기에, 나는 그런 심리를 적극 활용했다.
방송은 잘 나갔다. 그는 같이 식사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사담을 나눴고 신세 한탄을 주고받았다. 당시 둘이 겪었던 조직에서 스트레스, 괴롭힘이 비슷해 놀랐고, 이를 계기로 친해졌다. 나이도 같아 그냥 친구가 됐다.
어느 날, 그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말해줬다.
“지수야, 내가 이건 와이프에게도 말하지 못한 거야. 누군가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뭔데? 말해봐.”
“예전 병원 선후배들 앞에서 어떤 선배가 내 따귀를 때렸어.”
“뺨을? 왜?”
“나 보고 꺼지래. 재수 없다고. 너 있던 지역으로 가라고.”
“너도 때렸지? 안 때렸어?”
“그 자리에서 나도 그 선배를 때리면 나는 끝이야. 이 바닥에서.”
“아무도 끼어들지 않아? 선배들이 구경만 해?”
“응”
“그 새낀 지금 어딨어? 이름이 뭐야?”
“지수야, 열받지 마. 반전이 있어. 그 선배는 얼마 전 지역의 개인 병원에 취직했어. 그전에는 내 밑에 있었어. 내가 교수로 임용됐을 때 그 선배는 내 밑에 팰로우.”
“와, 통쾌해. 그래도 CCTV 없는 화장실에서 패지 그랬어. 너 피지컬도 좋은데.”
“아냐. 내가 이겼잖아.”
“근데 너 지금 울잖아. 이 새끼야. 야! 근데 왜 나도 눈물이 나냐.”
우리 둘은 울었다. 많이.
지역에서 의대를 나온 그는 실력이 뛰어나 서울 유명 대학병원에서 팰로우(전임의)를 거쳐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이를 아니꼽게 본 텃세와 선배들의 괴롭힘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할 수밖에 없는 곳 중 하나가 의사 세계 같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근무 환경, 도제식 교육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 엘리트끼리 심한 경쟁은 엄한 규율과 분위기 속 선후배 문화를 쉽게 만드는 듯하다.
그는 울분을 마음속에 삭였다. 오직 실력만 키웠다. 그를 미워하는 이들도 그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멋진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힌 선배를 때려눕혔다. 소중한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이뤄야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그는 지옥 속에서도 절망에 갇히지 않고 견뎌냈다. 본인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를 제자로 둔 명의들은 하나 같이 그를 아꼈다. 그의 실력은 성실과 강한 책임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뒷받침돼 더 빛났다.
“지수야, 내가 왜 그날 당하기만 했는지 알아?”
“너가 그 새끼를 패면 너 끝난다며.”
“응. 난 평생 수술하는 의사로 사는 게 소원이야. 나도 선배를 때렸으면 나는 설 자리가 없어져. 나는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했어. 한 대 맞고 쓰러졌는데, 몇 초 안 되는 시간인데도 머릿속이 정리되는 거야. 참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참자고.”
“알 것도 같고. 꿈을 위해서는 적의 가랑이 밑이라도 기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네 얘기 들으니까 나 못할 거 같아.”
“난 너무 절실했어. 지역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 간신히 자리 잡았는데, 이제 실컷 수술할 수 있게 됐는데, 여기서 참지 못하면 다신 수술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 새끼, 너 보면 피하겠다.”
“응. 나 보면 멀리서 피해. 얼마나 통쾌한지 몰라. 본인 팰로우 때 나는 교수 되고 그것도 같은 병원에서 말이지.”
“속이 다 시원하다. 멋져! 한을 승화시킨 너라는 놈! 이제는 승화 이런 거 하지 말고, 누가 너 때리면 너도 때려.”
우리가 식사 중에 그가 병원 응급실에서 콜을 받은 적이 있다. 응급환자한테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의 눈빛은 엄마였다.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
“지수야, 이 고기 다 먹고 가. 정말 미안해.”
“근데 너 밑에 교수들도 있는데, 왜 항상 너만 가?”
“나 퇴근할 때 병원 근처에 있을 거라고 말해뒀어. 내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거야.”
“빨리 가.”
생각해 보니, 나와 저녁 약속을 할 때마다 장소가 항상 병원 근처였다. 그 이유였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빨리 뛰어가기 위해서.
그는 미국 유명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그곳에서도 열심히 마음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가 금발 할머니, 흑인 할머니를 어떤 방식으로 살갑게 대할지 궁금하다. 그곳에서도 저녁 식사를 하다가 병원을 향해 뛰어갈 그가 그려진다. ‘엄마’ 얼굴을 한 채.
그는 내게 숙제를 내줬다. 인생의 본질을 잊지 말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기억하며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끝)-
※미친 PD 작가님과 소위 작가님의 신간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만든 유튜브 숏츠 영상.
※두 분 모두, 브런치스토리에서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 많이 행사해 주세요.
※두 분이 가시는 길이 꽃길입니다. 지치지 마세요. 독자들을 위해 컨디션 관리 필수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505xA2GccGk?si=LT18ViItVA-MBC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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