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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Oct 11. 2020

홀로 어린이 5명 데리고 남한산성을 (조금) 걷다

거리는 짧았지만 나한테는 고난의 행군

대문 사진은 남한산성 대장정 시작 전 찍은 사진입니다.


장인 장모님에게는 손주 7명이 있다. 원래 계획은 이번 한글날에 장인어른께서 손주 2명을 세종대왕릉을 데리고 가려고 하셨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나는 애들을 데리고 그 조카들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조카들은 장인 장모님 댁에 가까이 산다). 장모님은 우리도 같이 가자고 하신다. 참고로 이 날 아내는 일이 많아서 애초 나무 캐는(일하는) 논플레이어 캐릭터(NPC-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여서 하루 종일 나 혼자 애들을 하드 캐리해야 했다.


세종대왕릉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나는 얼른 찾아보았다. 오마이. 편도만 거의 2시간이 나왔다.

진짜로 가진 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심지어 내려가려는데 또 다른 조카 한 명을 같이 데려가 달라고 SOS 연락이 왔다. 그쪽 엄마 아빠도 하루 종일 나무 캐는 NPC. 빨간 긴급 비상등이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목적지까지 내 차에 어린이 세 명을 데리고 왔다 갔다 하면 4시간에 구경 1-2시간. 출발하기 전부터 두려움이 엄습했다. 차에 조카를 태우려고 하니 가기 싫다고 폭풍울음. 난 일단 조카를 차에 태우고 키즈폰 있는 딸한테 엄마에게 연락하라고 한다. 회군하려고 하는 찰나 조카가 울음을 멈춘다. 아직 GG(게임오버) 칠 때는 아니다.


하지만 장모님 댁에 도착해보니 장인어른께서는 이미 나가실 준비가 끝나셨다. 나는 계획의 변경을 바꿔보려고 편도만 2시간이라고 장인어른께 살짝 말씀드렸으나, “가면서 시간이 줄어들 거다”라 하신다. 예정대로다.


출발. 차량 두 대로 간다. 내 차에 애 셋, 장모님 차에 애 둘과 장인어른. 내비가 안내하는 길은 장모님에게 익숙한 길이 아니다. 장모님께서 “자네 차를 뒤에서 따라가겠네.” 이제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더 늘었다. 점검 사항은 내 아들, 어린 조카 그리고 뒤따라오는 장모님 차가 잘 따라오는지. 쉽지 않다.


40여분을 갔을까. 계속 차가 막힌다. 뒤에서 아들이 울었다 웃었다 한다. 그런 와중에 내가 스트레스받는 걸 알고 확인차 아내가 전화가 온다. 하필이면 이때 아들 울음이 급피치. 아내는 장모님한테 전화해서 회군을 요청한다. 장인어른도 마지못해서 회군에 동의. 하지만 단서가 있다. 남한산성으로 회군. 여기도 예감이 안 좋다. 병자호란 때 조선이 40일간 청나라와 싸우다 결국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삼궤구고두의 예를 하지 않았던가.


40분을 가서 도착하니 산 아래부터 차가 막힌다. 30분을 가서 겨우 위에 도착했다. 이번엔 주차장이 없다. 두 개를 지나쳐 작은 곳을 들어갔더니 여기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군을 하려는데 한 대가 나가서 주차 성공.


이제 한 시간 반 차에 있었으니 당을 보충할 시간. 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다다다닥 뛰는 애들과 조카를 동시에 추적하려 하니 쉽지가 않다.


다 먹고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 하지만 가장 어린 조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산책은 30분 만에 종결.

사촌누나한테 메달린 막내 조카

장인어른은 애들하고 위에서 기다릴 테니 차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장인어른은 평소 손주들을 잘 안 보시니 장모님과 나는 5명을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기로 한다. 하지만 애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뛴다. 장모님은 보다 못해 “먼저 내려갈게”하시고 사라지신다.


???!!! 내 뇌가 이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장모님은 5명의 애들을 나한테 다 맡기고 차로 먼저 가버리신 것이다.


나의 고난의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주차장까지 1킬로 좀 안되는 거리이다. 일단 가장 어린 조카는 내가 손잡고, 나머지는 2인 1조로 손을 잡게 하고 걸어가게 하였다. 하지만 어린애들이 가만히 앞으로만 걸어간다면 애들이 아니다. 평소에 얌전한 어린 조카부터 손 잡기 싫다고 앞으로 뛰쳐나간다. 인도 주변에는 각종 식당과 커피숍이 있어서 차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식은땀과 갑갑함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미식축구 작전처럼 애들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때 인자한 경광봉 들고 있던 주차 요원이 등장. 그분은 내가 애들 혼자 데리고 가는 게 보기가 딱했는지 내려가면서 차들이 튀어나오면 막아주신다. 덤으로 조카 2명이 있다고 말하면서 갔다. 덕분에 우리는 주차장까지 무사히 갔다. 휴. 주차 요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조카 집으로 회군. 내가 애들 5명 태우고 반대편으로 가는 바람에 10여분 늦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도착. 긴 하루가 끝났다.


한글날에 한글은 안 배우고 혼자 애들 5명 데리고 돌아다니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 날이다.


갈치 장모님에 대한 글:

https://brunch.co.kr/@jitae20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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