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퉁불퉁 뚝배기 Nov 11. 2020

거짓말한 초등학생 딸, 밤새 훈육 방법을 고민한 부모

어느 부모나 한 번은 겪어볼 일을 우리 부부도 겪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뒤가 안 맞아...”


내가 딸의 거짓말을 알게 된 건 애들이 잠을 들고 아내는 출장 중이라 집에 없었을 때였다. 딸이 말한 걸 난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1995년) 형사가 영화 끝에서 사무실을 둘러보다 진짜 범인인 카이저 소제의 정체를 알게 된 것처럼.


예전에도 딸이 거짓말을 했었던 적이 있어서 그때는 우리 부부가 말로 혼냈지만 딸이 다시 거짓말을 해서 결과적으로 당시 아빠의 폭풍 잔소리와 엄마의 자상한 토닥임은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화가 나기보다는 절망이 몰려왔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사회에서 그래도 나 자신도 올바르게 살려고 하고 자식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는데... 그리고 의심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딸이 진범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한담... 일단 아내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원래 애들을 데리고 가서 아내를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난 이런 상황에서는 여행 취소가 맞다고 판단했다.

내가 아내에게 보낸 긴 카톡 중 일부

어떻게 혼을 내야 하나... 딸의 기질과 성향을 생각할 때 친구들과 만남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영혼의 친구 장미(가명)를 한 달간 못 만나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 장미야...) 하지만 이것도 부족하다. 곤장을 10대 쳐야 한다고 일단 마음을 먹고 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아내는 아직 안 자고 있었다. 난 급히 휘갈긴 아래 내용을 갖고 말했다:

새벽에 내가 구상한 초안

아내도 웬일인지 순순히 곤장 10대에 동의했다. 아내도 딸에 대한 실망감이 컸으리라. 그리고 부모의 역할 분담. 일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선발 등판, 그리고 출장 일정이 끝나고 오후에 돌아오는 아내가 구원 등판. 각자 딸에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말할지 나누었다. 통화가 끝나고 난 집에 적절한 곤장이 있는지 찾아봤다. 일단 병 씻는 나무 솔이 적절해 보였다. 아내에게 말하니 안방에 있는 납작한 나무 빗을 사용하라고 한다. 내 손바닥을 때려보니 나무 빗이 더 아프다... 아우


일단 난 자고 있는 애들 옆에 누었다. 아무래도 잠이 안 온다. 군대에서도 부하를 안 때리겠다고 다짐하고 한 번도 안 때렸는데 차마 내 딸을 곤장을 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 스스로 내 원칙을 깨는 거 같다. 그리고 일단 곤장을 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게다가 곤장 치는 꿈까지 직전에 꿨으니... 난 새벽에 일어나서 아내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새벽에 급히 수정해서 아내에게 보낸 두 번째 안

곤장 대신 반성문 쓰기와 핸드폰으로 대체해보니 내 마음이 좀 더 가볍다. 다시 자면서 다시 혼내는 꿈을 꿨지만 꿈에서도 마음이 덜 무겁다.


아침에 아내 문자가 도착했다. 필요하면 아내가 곤장을 치겠다고 한다.

아내의 문자 확인. 이제 딸을 혼낼 일만 남았다

아침에 딸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불렀다. 증거를 보여주고 왜 거짓말했는지 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딸에게 실망이 컸다면서 말하면서 나는 감정이 북받쳐 운다. 아, 우는 건 혼나는 딸 몫인데 왜 내가 눈물이 나올까...


난 심호흡을 한 후 딸의 거짓말에 대한 벌을 말했다. 그리고 딸은 오전 내내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딸이 반성문을 쓰고 아들은 넷플릭스를 보는 동안 난 점심을 준비. 이번에도 시금치 무침(나물 반찬은 이것만 만들 줄 아니까), 스팸과 계란 + 두부를 내놓았다. 딸이 혼났으니(그리고 또 혼날 테니) 입이라고 덜 꿀꿀하라는 뜻을 담아서 스팸을 준비했다. 게다가 내가 따로 다른 건 못 만드니...


오후에는 아내가 구원투수로 등판. 아내가 한참 딸에게 이야기한다. 이번엔 딸도 엄마도 운다. 아내는 8****k 사이트에서 보고 딸에게 몇 대 맞아야 앞으로 재발하지 않을 거냐 하니 딸이 한 대만 맞겠다고 한다... 아니, 딸아, 스스로 좀 더 맞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딸은 그날 저녁 내 핸드폰에다 가상의 나랑 자신의 대화를 적어놨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해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 왈 아무래도 딸이 잘못을 했음에도 아빠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서 적은 것 같으니 나보고 화답을 하라고 한다.

위에 적힌 이상한 외계어는 내 잔소리를 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다음날 아래와 같이 써서 딸에게 보여줬다:

아빠는 혼내서 미안하진 않지만 여전히 널 사랑한단다...

이 사건 이후로 난 딸이 원하는 자잘 자잘한 건 대체적으로 들어준다. 그리고 내 잔소리도 좀 줄였고(아, 그래도 옷은 좀 따뜻하게 입어야지). 자잘한 거에 대한 잔소리만 많이 하다 더 큰 문제를 키운 게 아닌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 긴 24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