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퉁불퉁 뚝배기 Nov 20. 2020

우리 집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긴 줄 알았던 하루

가사 도우미 이모님 황급히 코로나19 검사를 받다

“星期六” (토요일)


내가 알아들었던 건 딱 한마디였다. 예전에 보이스피싱당할 뻔한 우리 집 가사 도우미 이모님은 마루에서 어떤 분하고 이번에도(!)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계셨다. 한국어로 통화하시다가 내가 왔다 갔다 하니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하신다. 난 중국어를 왕년에 배웠지만, “날씨 좋다” “밥 먹었냐” “난 OOO이다” “중국어 못 해” 수준을 못 벗어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던 한마디는 “토요일”이었다.


내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HSE(보건, 안전, 환경)이다. 무슨 일이 닥치면 내 뇌는 즉각적으로 이쪽부터 먼저 점검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노출된 외부 자극을 머릿속에서 처리하다 보니 주변에서 내가 항상 피곤해 보인다고 말한다. 아마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일 듯하다.


나는 방문을 닫고 10여 초간 다음을 생각을 해보았다:


1. 이모님이 친근하게 통화하는 것을 보니 통화 상대는 사기단 같지 않아 보였다.


2. 하지만 무슨 일이 (또) 터진 것 같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누가 쓰러지거나 다친 거 같진 않았다.


3.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 무슨 일이 그 시점에 있었던 것 같다.


4. 안 그래도 아침 뉴스를 보니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5. 아! 이모님 주변에 누가 코로나19 걸렸나 보다.


나는 다시 마루로 나가서 통화가 끝난 이모님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나: “오늘 확진자가 꽤 많데요.”


이모님: “그래요?”


나: “이제 우리 주변에도 슬슬 있을 거 같아요. 혹시 이모님 주변에는 없겠죠?”


이모님: (아무 말이 없으시다)


나는 내가 과민 반응했나 싶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몇 분후 평소와 다르게 집안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신 이모님이 나를 다급히 부르신다.


이모님: “제 아는 사람이 어느 집에 갔는데 거기 확진자가 생겼데요. 근데 제가 그 지인을 주말에 만났어요.”


나: (속으로: 왓더포크!!!) “아... 그분 만나고 며칠 지났는데 이모님 발열 같은 거 없으시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이모님: “그래도 검사받아야겠죠?”


나: “네(속으로: 당연히 받아야지!!) 아 먼저 온도 체크해보세요”


이모님이 열을 체크해보시니 다행히 37.1도다.


나: “이 근처 가까운 데가 OOO에요. 거기 가셔서 지금 (속으로: 롸잇나우!!) 검사받아보세요. 애들은 제가 챙길게요”


이모님은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입으신다. 이모님이 나가시고 난 아내에게 상황 보고. 그리고 바로 집 전체를 알코올 스프레이로 소독한다. 알코올 분무를 흡입하면 인체에 좋을 거 없다는데... 코안이 이상하다. 느낌 탓인가...


까닥하면 우리 집이 동네 확진자 증가의 그라운드 제로가 될 수 있을 판이다. 정황상 이모님이 음성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검사 결과 전까지 일단 애들 학교와 유치원을 안 보내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모님이 양성 판정일 경우 우리 가족도 뛰쳐나가서 검사받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모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점심시간이라 검사가 오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신다. 그럴 경우 검사 결과가 2일 정도 걸릴 테니 그때까지 우리 가족도 일체 대외활동에 차질이 생긴다. 할 수 없지...


이모님은 3시간 후 돌아오신다. 대역죄인 표정을 짓고 계신다. 그러면서 그 확진자가 병원을 자주 갔기 때문에 갈 때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셨고 그전까지는 음성이었고, 그때까진 이모님의 지인이 괜찮았을 것이라고 한다. 주말 지나서 그 확진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으니 이모님 본인은 괜찮을 거라고 하신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다음날 이모님한테서 아침에 문자가 온다.

상황 종료. 이모님도 당분간 조심하시겠지.


이번에는 잘 넘어갔다. 정리해보면,


1. 코로나19는 지금도 어디서 터지고 있고 우리 가족이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2. 이번에는 이모님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반대로 전파를 할 수 있었다.


3. 코로나19 검사하는 분들 고생이 많다. 밤사이에 결과를 돌려서 아침에 알려줬으니 누군가는 야근을 했을 것이다.


4. 중국어 다시 배워야겠다.


보이스피싱 당할 뻔한 이모님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30








매거진의 이전글 쇼생크 탈출은 아니고...자가격리 해제(탈출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