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가 두 번째로 원하는 것을 잘해준다. 첫 번째가 문제다…
이 글은 아내의 시점으로 작성해봤습니다.
명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소설의 시점은 셜록 홈스의 인도에서 군 복무한 따뜻한 남자이자 조수인 존 왓슨으로 설정했지만 몇 편은 똑똑하면서 차가운 런던 남자 셜록 홈스의 시점에서 썼었습니다. 후자의 시점은 생각보다는 재미는 없지만...
10년간의 부부생활을 해보니 아내의 뇌 구조의 98프로를 알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2프로는 평생 모르겠죠...
이 글은 아내 보라고 쓴 남편어천가가 아니란 걸 확. 실. 히. 밝혀둡니다.
제부가 결혼 10년 차가 되어 가는데 여전히 나의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을 듣고 오늘도 변함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내 남편에게 말을 해보았다. 나는 단순하기 때문에 남편과 달리 어떤 의도를 갖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말한다(라고 미리 강조해 두고 싶다).
나: “여전히 제부는 OO이에게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표현을 잘한다고 하네”
남편은 오늘도 일심동체인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아마도 전기차/스파이더맨/대선 후보들의 헛발질 관련 기사 중 하나를 보고 있겠지. 최근 나에게 윤후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걸 보니 3번째 같다. 윤후보에 관심 갖는 에너지를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도 쏟아봐라… 이 인(이하 생략).
남편의 아름답지 못한 불쑥 올라온 배가 오늘 특히나 더 돋보인다. 빛에 반사되어서 그런지 더 기름져 보인다. 남편이 삼국지의 장비 같은 성격이라고 결혼 초에 말했는데 진짜 장비 같은 육체가 되어가는 거 같다.
남편은 몇 초간 멈칫하다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충전시킨다. 우리의 대화가 끝나면 또다시 핸드폰을 보려고 충전하는 걸 테지.
남편: “나는 여보를 픽업하잖아. 난 사랑의 표현을 행동으로 보여 주잖아”
내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렇게 정곡을 찌를 때 특히나 얄미운데, 1000% 맞는 말이다.
난. 택시를.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데려다주면 땡큐다.
나의 아빠도 엄마가 데려다주는 걸 좋아하신다. 난 그 점을 닮은 것 같다. 나도 3살에 택시를 타겠다고 울어서 엄마를 곤란하게 했고 지금도 그 이야기가 여전히 회자된다.
남편이 결혼 전 남발한 수많은 공약들은 다 사라졌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게 하나 있다면 픽업 서비스다.
연애 전이나 결혼 후나 꾸준히 나에게 데리러 갈 필요 없냐고 물어본다. 혹은 내가 부탁하면 군말 없이 응한다. 몇 년 전 눈이 엄청 내린, 출장에서 돌아온 날에도 공항까지 왔었다.
특히 베키(전기차)로 바꾼 후 픽업 가냐고 물어보는 빈도가 올라간 것 같다. 전기차 충전비가 기름값보다 훨씬 싸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다만, 맞춰진 시간에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남편은 좀 경직되어 있다.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차들이 빵빵거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에게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남편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이빠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말로아이들을설득해보라고하니그새본인화를참지못하고윽박지르지않나울고있는아이를따뜻하게안아주지도않고잔소리만계속하고칭찬은잘안하고지적질만하고항상긴장되어있고예민하고콜레스롤약이나먹고스트레칭하라고하면누워서핸폰이나보고아이들에게관심은별로없어보이고급한성격으로가족들보채고(지금은덜하다)그릇깨면스스로욕하는데애들앞에서하니보기싫고난멋진건강남자와마라톤하면서늙고싶은데이남자는10년이지나도크게변한게없어서포기햐야하나싶다가도포기못해…)
휴… 오늘도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 건강을 챙겨야겠다. 나라도 건강해야 저 남자를 챙기지 누가 챙기랴. 내가 남편과 연애 때 남편의 픽업 서비스에 반해서 결혼을 하기로 한 거니 내가 내 발등을 스스로 찍은 거다.
어쩌겠나. 그래도 남편이 요새 아침에 견과류를 열심히 먹고 있으니 그래도 남편이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오늘도 1mg을 가져본다.
아내의 시점에서 글을 쓰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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