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건가 아니면 다른 집도 그런가
(폭발음) 쾅. 쾅. 쾅… 쉬유융???
얼마 전 초등학생 딸이 잘못된 행동을 하자 나는 바로 폭풍 잔소리 전개(1차 꽝). 곧이어 둘이 있을 때 아내는 나에게 폭풍 잔소리 전개(2차 꽝). 그리고 나의 반격(3차 꽝).
3차 반격 후 아내의 역공(4차 꽝)은 지금까지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나의 잘못이고 내가 안 바뀔 거라는 결론으로 끝났는데 이날은 다르다.
“당신은 아이들을 사. 랑. 하. 지. 않는 것 같아.”
순간 나의 뇌가 정지.
이건 최대한 많이 발사하는 20세기 전함의 포탄이 아니라 한 곳을 집중 타격하는 21세기 전함의 미사일이다.
내 반응이 늦어지자 아내는 계속 미사일을 날린다.
“사랑하면 애들한테 그렇게 잔소리를 할 수 없지”
“사랑하면 애들을 그렇게 자잘한 걸로 혼내지 않지”
“사랑하면 애들 스킨십도 많이 해주는데”
(중략)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기준으로는 난 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의 우선순위를 정리해보니:
1위 가정 대소사(가족 건강, 수면, 숙제 등)
2위 가정의 연장선상+개인 관심(대출, 전기차, 태양광 등)
3위 파랑새 증후군
4위 아내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
5위 둘째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엄마가 첫째를 담당하므로 내가 둘째를 더 챙긴다)
6위 첫째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엄마가 첫째를 담당하므로 내가 첫째를 덜 챙긴다)
…
21위 브런치
22위 돼지고기 만두
23위 볶음밥
…
63위 우주의 신비(나중에 정리해서 글을 올릴 수도 있다)
64위 아내의 생일선물(한 달도 안 남음)
…
100위 국가대표 축구팀(야구도 관심이 덜한데…)
정리해보니, 내가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가족들과 관련된 일이 내게는 최우선이므로 일이 생기면 이를 최대한 빨리 해결 또는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잘 커가도록 가리키고 내가 모범이 되도록 하는 게 나의 표현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의 급한 성격이 결부되어서 잔소리가 동반되고, 결국 나는 아이들이나 아내가 싫어하는 집안의 슈퍼 빌런으로 비친다.
게다가 ISTJ인 나는 ENFP인 아내에 비해 공감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아이가 울거나 삐죽거리면 이유를 찾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상황을 수습하는데 더 집중한다.
그렇다 보니 애정 표현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몇 번 하다가도 잘 안 하게 된다. 난 딸바보, 아들 바보가 아니라 바보 아빠?
다른 집은 어떤지 궁금하다. 다른 집도 부모 한 명이 잔소리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억울한 걸까 아니면 내 방식이 잘못된 건가.
에필로그.
부부 전투가 끝나고 자욱한 연기만 남고 난 며칠 후 아내는 책을 하나 주문했다. 하지만 난 아직 못(또는 안) 읽었다.
https://brunch.co.kr/@jitae2020/270
https://brunch.co.kr/@jitae2020/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