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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Jul 10. 2020

영화 대사를 일상에서 사용해볼까(3)-외국인과 협상편

아내가 두 번째 글이 첫 번째보다는 쪼금 낫다고 해서 용기를 낸다

원래 “외국인과 협상할 때 알아두면 좋은 협상 수칙” 제목으로 쓰려다가 방향을 틀어서(어이없는 근자감이 생겨서) 영화 대사 사례를 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 가지 내용을 엮어봤다.


이 글을 써보려고 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외국어, 특히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이에 대한 극복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열광을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데 이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인지도.


사례#1 2007년 한미 FTA 협상 중 한국 외교통상부 남영숙 제2교섭관이 미국이 계속해서 기술표준을 시장에 맡기자고 계속 푸시하자 “over my dead body”라고 해서 국내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세계 유일무이의 천조국과의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 때문에도 칭찬을 받았겠지만 한국인이 잘 안 쓰고 미국인들만 쓰는 고급(?) 영어를 했다는 점에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교수로 계시는 “over my dead body” 주인공

사례#2 얼마 전 봉준호가 기생충 시상식을 다니면서 옆에 동행했던 샤론 최 통역사가 주목을 받았다. 이번 경우에도 미국인들만 쓴다는(?) 표현 “cold”를 써서 우리가 열광했다. 토크쇼 호스트가 기생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어보자, 샤론은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라고 답변했다.

지미 팰런 토크쇼에 봉 감독과 출연한 샤론

이 둘의 공통점을 보면 엄청 대단한 표현을 사용한 것보다는 외국인처럼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외국인과의 협상(또는 말하기)에서 몇 가지 수칙을 지키면 우리의 두려움은 줄고 근자감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1 근자감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많은 중국인, 인도인, 브라질인들을 보면 본인들의 영어가 되던 안되던 (또는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아도) 막 내지른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은 근자감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반면 우리는 서로에게는 근자감은 있지만 외국인들 앞에서는 수세적이고 약해진다.


예전에 내가 브라질인들과 협상을 할 때였다. 이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투자와 보증을 서야 한다고 밀어붙혔고, 우리는 내부적으로 입장(계속 투자할지 말지)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 이때 브라질 협상팀은 계속 우리가 그렇게 나오면 딜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협박을 했다. 계속 반복하자, 내가 나서서 반대로 그쪽에서 그런 주장을 하면 딜이 깨진다고 했다. 그랬더니 상대 협상팀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너네 변호사가 딜을 깬다!!!"라고 소리쳤다. 난 눈을 멀뚱멀뚱하면서 태연한 척했다. 상대의 변호사는 차마 나한테 손가락질을 할 수 없는지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기만 했다. 회의가 잠깐 파한 사이에 우리 쪽 협상팀 리더에게 상대가 와서 "너네 변호사가 세게 나오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서로 좋게 잘해보자"하고 이후 회의가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난 나중에 상대 변호사에게 브라질 협상팀의 손가락질하는 상황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영국인 변호사 왈 "프랑스인들도 그래").  


만약 협상 때 상대방이 너무  밀어붙일 때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잘해볼까"와 같은 대화 시도를 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여주 스칼렛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남주 레트는 저 대사를 내뱉는

#2 영어 잘한다고 너무 말하지 마라

대체적으로 볼 때 임원들이나 부장들에 비해 젊은 과장, 대리급 직원들의 영어 실력은 매우 우수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후자는 관련 경험이 부족하여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실수를 하게 된다. 예전 협상 중 대리가 상대방이 말한 내용마다 “I totally understand”를 여러 번 해서 상대는 그걸 가지고 그 대리와 같이 온 임원에게 동의하지 않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협상하다 계속해서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 양측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면, 그리고 상대방이 우리의 주장에 대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가 상대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해명하지 않고 간단하게 한 마디로 상대의 흐름을 끊을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투페이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말한 대사(협상에서는 비명은...)를 참고해보자: "It's not about what I want. It's about what's fair!"

회의 중에 이런 얼굴로 소리 지르면 큰일 난다

이걸 살짝 바꾸어서 활용해보면 어떨까: "It's not about what [we] want. It's about what's fair [to both sides]."


#3 협상 중 틈틈이 챙겨 먹어야

외국인들과 하루 종일 협상을 하다 보면 밥 먹을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상대방이 내부 회의를 한다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와서 한두 시간 이야기하다 다시 또 자리를 비우고. 이것은 의도적인 협상 전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배가 고프면 급격히 능률이 떨어지고 집중이 안되며, 짜증이 늘게 된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회의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마라톤 회의를 해도 끄떡없다. 하지만 우린 하다못해 봉지커피랑 사탕이라도 먹어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러니 꼭 챙겨 먹자.


내가 참석한 어느 회의에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었다. 그런데 우리 쪽이건 저쪽이건 아무도 밥을 먹자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협상이 끝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상대방이 다 타버린 피자를 저녁 9시에 주문해서 다 같이 먹었는데, 아무리 배고파도 타버린 피자가 맛있진 않았다. 이후 나는 좀 더 목소리를 내서 “거, 밥 좀 먹고 합시다” “우리끼리라도 식사하러 가시죠”와 같은 막말(?)을 하게 되었다.


아이언맨 1에서 토니 스타크도 동굴에서 탈출 후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I've been in captivity for three months. I want an American chesseburger." (동굴에서 3개월 잡혀있었다. 미국산 치즈버거 먹고 싶다)

로다주도 햄버거를 먹고 기자회견을 했었다.

위 대사를 살짝 비틀어서 활용해볼 수 있겠다. "We have been talking for [몇 시간] hours. I want [어떤 음식]."


협상 중 시의적절한 대사를 (또는 드립)을 치려면 평소에 어떤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지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샤론 최나 남교수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회의 중 한 두 마디는 던져서 분위기를 반전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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