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몇 년 후 차례와 제사를 없애고 위령미사로 대체했다
**어머니께서 한 때는 연간 5번이 아니라 8번의 차례와 제사를 지냈다고 하십니다. (...)
어머니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제 기질상 나중에 사모곡을 하기보다는 생각날 때 쓰는 게 적기라고 생각해서 써봅니다(게다가 제가 지독한 음치여서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점도 있고요). 추석 연휴이기도 하고요.
명절 차례와 제사에 관해서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때 우리는 차례와 제사를 일 년에 총 5번 했다. 어머니 본인이 혼자 (아버지 도움으로) 다 하셨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차례와 제사를 완전히 없애셨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어머니의 마스터플랜이 있었다.
어머니는 생각이 많으신 분이다. 생각이 많으셔서 그런지 책과 신문을 남들보다 더 읽으신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또한 완벽주의자이시다(그래서 본인이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시다). 그리고 신념 이 확고하시다. 마음을 한번 정하면 절대 꿈쩍 안 하신다(투표를 안 하겠다고 정하시면 절대 투표장에 안 가신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두 할머니(나에겐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를 몇 년간 모신 경험이 있으셨다.
생각, 구독, 완벽주의, 신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머니는 차례와 제사에 대한 결론을 이미 자식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내리신 듯하다. 첫 번째 결론은 차례와 제사 준비는 어머니 본인이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니 (본인이 힘들어도) 혼자 한다. 두 번째 결론은 본인 대에서 차례와 제사를 끝낸다.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실행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꾸준히 설득하셨고 아버지는 결국 동의하셨다. 아버지도 나름 대단하신 점이 계속 차례와 제사를 하자고 밀어붙이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결자해지 중 해지를 한 셈이다.
우리 형제가 장가간 후, 어머니는 며느리들한테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며느리들은 차례와 할아버지 제사 때 그냥 와라. 내가 다 준비한다.” (설마..??)
며느리들은 겉으로는 “야호 좋아요!!!” 리액션은 안 하고 일단 알겠습니다 했다. 어찌 보면 직장 상사가 야근해서 직접 보고서 쓸 테니 부하 직원들은 퇴근하라고 하면 부하 직원이 괜히 더 부담을 느끼고 집에 가서도 편하지 않은 심리겠다. 아, 상사가 아직도 집에 안 가고 사무실에 있나...
혹시나 해서 일단 첫해 아내는 차례 전날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내가 오는 걸 예측하신 듯 이미 대략적인 차례 준비를 해놓으셨다. 차례 당일에 일부 할 것만 남겨놓으셨다. 그래서 그다음 날 우리는 과일을 가지고 서둘러 일찍 갔다. 그랬더니 이미 완료. 아버지는 병풍을 펼치고 계셨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밥, 국과 접시들의 이동. 그리고 끝나고 설거지.
우리 부부는 유튜버 워너비 딸(지금은 관심이 한풀 꺾인 듯)과 아들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차례나 제사 때 그나마 일찍 가던 것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스터플랜은 차례와 제사를 위령미사로 대체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제는 가족이 모여 미사를 보고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자리 잡혔다.
어머니, 오랫동안 차례와 제사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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