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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Sep 30. 2020

어머니왈 “며느리는 그냥 와라, 차례는 내가 준비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차례와 제사를 없애고 위령미사로 대체했다

**어머니께서 한 때는 연간 5번이 아니라 8번의 차례와 제사를 지냈다고 하십니다. (...)


어머니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제 기질상 나중에 사모곡을 하기보다는 생각날 때 쓰는 게 적기라고 생각해서 써봅니다(게다가 제가 지독한 음치여서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점도 있고요). 추석 연휴이기도 하고요.


명절 차례와 제사에 관해서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때 우리는 차례와 제사를 일 년에 총 5번 했다. 어머니 본인이 혼자 (아버지 도움으로) 다 하셨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차례와 제사를 완전히 없애셨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어머니의 마스터플랜이 있었다.


어머니는 생각이 많으신 분이다. 생각이 많으셔서 그런지 책과 신문을 남들보다 더 읽으신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또한 완벽주의자이시다(그래서 본인이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시다). 그리고 신념 이 확고하시다. 마음을 한번 정하면 절대 꿈쩍 안 하신다(투표를 안 하겠다고 정하시면 절대 투표장에 안 가신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두 할머니(나에겐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를 몇 년간 모신 경험이 있으셨다.


생각, 구독, 완벽주의, 신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머니는 차례와 제사에 대한 결론을 이미 자식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내리신 듯하다. 첫 번째 결론은 차례와 제사 준비는 어머니 본인이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니 (본인이 힘들어도) 혼자 한다. 두 번째 결론은 본인 대에서 차례와 제사를 끝낸다.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실행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꾸준히 설득하셨고 아버지는 결국 동의하셨다. 아버지도 나름 대단하신 점이 계속 차례와 제사를 하자고 밀어붙이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결자해지 중 해지를 한 셈이다.


우리 형제가 장가간 후, 어머니는 며느리들한테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며느리들은 차례와 할아버지 제사 때 그냥 와라. 내가 다 준비한다.” (설마..??)


며느리들은 겉으로는 “야호 좋아요!!!” 리액션은 안 하고 일단 알겠습니다 했다. 어찌 보면 직장 상사가 야근해서 직접 보고서 쓸 테니 부하 직원들은 퇴근하라고 하면 부하 직원이 괜히 더 부담을 느끼고 집에 가서도 편하지 않은 심리겠다. 아, 상사가 아직도 집에 안 가고 사무실에 있나...


혹시나 해서 일단 첫해 아내는 차례 전날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내가 오는 걸 예측하신 듯 이미 대략적인 차례 준비를 해놓으셨다. 차례 당일에 일부 할 것만 남겨놓으셨다. 그래서 그다음 날 우리는 과일을 가지고 서둘러 일찍 갔다. 그랬더니 이미 완료. 아버지는 병풍을 펼치고 계셨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밥, 국과 접시들의 이동. 그리고 끝나고 설거지.

가져간 과일들...

우리 부부는 유튜버 워너비 딸(지금은 관심이 한풀 꺾인 듯)과 아들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차례나 제사 때 그나마 일찍 가던 것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스터플랜은 차례와 제사를 위령미사로 대체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제는 가족이 모여 미사를 보고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자리 잡혔다.

명절에 하는 위령 미사 모습

어머니, 오랫동안 차례와 제사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유튜버가 되고 싶은 딸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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