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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또 Oct 30. 2020

이것은 꽃게인가 거미인가

시골 생활하다가 거미 때문에 놀라 까무러칠 뻔한 적이 많다.

고작 거미 가지고 왜 그런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겠다. 

혹시 사람 몸통만 한 거미가 집에 있어서 911을 불렀다는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큰 거미는 볼 수도 없겠지만 여기 호주에서는 반갑지도 않게 너무 흔한 일이었다. 

성인 남자 손바닥만 한 거미가 샤워실이든 주방이 든 심심찮게 보였고 거미뿐 아니라

먹고 남은 음식으로 우글우글 모여드는 개미의 습격은 환 공포증이 있는 나의 눈을 테러하기도 했으며 

자고 있는데 거미가 내 볼에 기어 다녀서 화들짝 놀라 손으로 잡아 던져 버린 일도 있었다. 

던지고 보니 어디로 가버린지도 모른 두려움을 아마 모를 것이다. 

덕분에 산속에서 몸이 조금이라도 간지러우면 무조건 놀라고 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한 번은 창문을 반쯤 열고 상쾌한 밤공기를 맡으며 침대에 기대 책을 읽는 중에 어떤 심상치 않은 그림자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대왕 거미가 내 쪽을 향해 슬금슬금 기어 오고 있었다. 

지금 상상만 해도 공포물이 따로 없다. 산속에서, 특히 어두운 밤에 창문을 연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더 이상 곤충들의 습격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더울지라도 카라반의 모든 창문 사이와 벌어진 틈을 테이프로 봉했고 여름에 창문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답답함보다 더 무서운 게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곤충과 거미, 개미군단들이었다.


다행히 호주 여름엔 정말 덥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만 가면 시원했는데

내 캐라반도 반쯤은 나무 밑에 있었고 저녁에는 시원했으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방에 걸어둔 수건을 빨래통에 넣으려고 뺀 순간 그 뒤편에 주먹만 한 대왕 거미가 떠 억 하니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소리 지르며 뛰쳐나와 옆 집 친구 개븐한테 부탁했다. 얼떨결에 잡아 준다곤 했지만 난 그의 겁먹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건장한 백인 남자도 그 거미만은 피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인가 보다. 

그는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장갑을 두껍게 끼고 빗자루로 쇼핑백으로 유도해서 넣어버린 뒤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다.


거미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상상 이상으로 징그러웠다. 갈색 거미에 털이 수북하다. 

꺅!! 크기는 말하자면 이것은 꽃게인가 거미 인가로 표현하면 이해가 쉽려나...


초록창에 호주 대왕 거미를 검색해보면 내가 봤던 그 거미가 나올 것이다. 

덤으로 잡는 방법들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내가 본 검색 결과 중 하나는 청소기로 빨아들이라고 했는데 

뒤처리가 더 힘들 것 같으니 비추이다. 진짜 못 볼 꼴을 볼 거 같다. 그만큼 정말 크다.


어쨌든 그 사건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진짜 카라반의 모든 틈을 다 막았기 때문에 오고 갈 구멍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샤워하는 동안 거미가 내 수건이나 샤워 바구니에 붙어있는 걸 모르고 내가 직접 들고 온

거밖에 없다. 캐라반으로 돌아가는 동안 혹시라도 거미가 내 몸으로 기어올랐다면..오...마이..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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