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곳에 있어

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14

by 지반티카

어젯밤, 일찍 누웠다. 오늘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의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몸살은 아니다. 열도 없다. 지난주 병원에 갔을 때도 큰 이상은 없었는데. 몸이 가렵고 불편한 정도를 넘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보통은 잠이 오지 않으면 눈을 감고 숨을 쉬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드는데, 너무 아프니 가만히 있는 것도 불편했다. 팔을 베고 왼쪽으로 돌아누웠다가, 오른쪽으로도 누워봤다. 어느 쪽도 졸음이 밀려오는 효과는 없었다.


멀리 밀어둔 핸드폰을 가져왔다. 아, 그러면 더욱 잠을 못 잘 텐데. 올해는 자기 전에 핸드폰을 보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집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을 검색창에 쳐봤다.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니, 뭘 검색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 뒤에는 웹툰을 좀 보았다. 그중에 눈을 잡아끄는 대사에서 멈추었다.


'여기엔 함바그도 영어 선생님도 돈도 있지만... 방자가 없어.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없어.'


<정년이>라는 웹툰의 주인공인 정년이가 속으로 말하는 대사이다. 노래를 하고 싶어 집을 떠나 상경한 뒤 국극단에 들어가 생활을 하다가, 극단에선 돈을 벌 수 없겠다 싶어 방송 출연을 위한 녹화 - 인지 생방송인지 잘 모르겠지만 - 에서 노래를 하면서 속으로 한 생각이었다.


오늘 오전 밖에서 이동 중에 얼핏 그 대사가 다시 생각났다. 그 대사에 눈이 머물렀던 건, 그게 한 때 내 이야기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내가 생각나자, 지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가 새삼 느껴졌다.

대학교 졸업하고 험난한 취업 준비 끝에 회사원이 되었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였다. 이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착실히 공부해 정도를 잘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생각했다. 대학원 가기 전에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도 회사를 좋아했다.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를 한참 몰랐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맹신이었다.


입사 후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과 신입 사원 연수가 재미있었다. 출장을 다니는 것도 좋았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회사 생활은 지루한 것이 되었다. 그것과 별개로, 계속해서 개편되는 조직이 불안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신입사원으로서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었다. 아무리 조직이 개편되고 옆에 앉아 있던 부장의 책상이 사라져도, 공채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부서로 옮겨졌다. 가고 싶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배울 일이 많은 부서이긴 했다. 그런데, 그래서 그랬는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통제 가능했던 업무량이 갑자기 너무나 많아지고, 따로 시간을 내어 배우면서 적용해야 하는 부분이 산더미였다. 그런데 실수를 해서도 안 되는 돈 관련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서워졌다. 그리고,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전 부서에서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어렸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부서 옮겨서 일은 해보자, 했었는데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실행으로 옮겨버렸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 말이다.


팀장님은 알겠다고 하고 퇴사를 도와주었다. 말리지는 않았지만, 한 마디는 했다.


"밖에 나가면 추운데."


봄이었고, 춥기는 빌딩 안이 더 추웠다. 번듯한 빌딩에 좋은 사무 환경, 휴게실, 구내식당, 없는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거기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회사를 그때 더 다녀봤으면 어땠을지 가끔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이내, 회사를 다니기엔 너무 자유롭고 고집스러운 영혼이어서 곧 때려치웠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회사 비슷한 근무를 이후 몇 번 했지만 모두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은 회사뿐만이 아니었다. 이후에 일했던 요가원에도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같이 살던 집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나로 글을 쓰고 요가와 명상 수업을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가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인 듯 보이지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환경을 박차고 나와서 두 발로 딛고 서야만 가능한 부분이었다.


집에는 부모님이 있고, 도와달라고 하면 잔소리도 하고 반대도 많이 하겠지만 어쨌든 생활에 큰 제약 없이 음식도 잘 곳도 부족함은 없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펼칠 수는 없다. 물질적인 풍족함을 받는 대가로 나의 시간과 도움을 주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러다 보면 창작과 수업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줄어 나의 것을 만들지 못하니까.


꿈만 꾸던 1인 가구 생활도 어쩌다 보니 시작이 되고,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다. 혼자이니까 뭐든 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내 시간만 잘 쪼개서 쓰면 다 감당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혼자 있기를 선택했으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기도 하다.


회사를 들어갈 때의 나는 글을 쓴다던지, 혼자 산다던지 하는 선택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엄두를 내보기는커녕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 글을 쓰는 꿈은 취업이 먼저라는 생각에 저만치 밀어두었고, 서울에서 혼자 산다니 가당키나 한가, 하고 집에 붙어있었다. 과거의 나는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때의 나일테니 그 선택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기 있게 퇴사하고 흘러 흘러 지금까지 온 나를 보면 도대체 신입사원이었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있다.


I am where I wanna be at.png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정말 많은 도움이 있었다. 일단은 잔소리와 반대를 많이 했던 부모님.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1인 가구 생활도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시작할 수 없었다. 아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준 요가, 명상 선생님들이 계셨고 수업에서 만난 수련생들이 있었다. 이외 다양한 분야들을 배우고 일에 도전해 볼 때 도와주셨던 선생님들도 계시다. 타고난 사주에 항상 선생님이 둘씩 있다고 했던 철학관 선생님 말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할 수 있는 만큼 열정을 쏟아 배우고 성장한 나의 노력도 나를 도운 부분이다. 도움을 받아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니 말이다. 고민도 많이 하고, 최선의 선택도 했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선택의 총합이니, 당시에 이게 맞나, 하고 내렸던 선택들이 괜찮았다는 것도 또 한 번 느낀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 이런 내용을 쓰게 된 것은 아니다. 뽐내는 것도 기분 좋으니 잠깐 해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지하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더 무언가를 해볼 의지가 생기고 움직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나를 위해 그런 부분을 챙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다.


언젠가 꿈만 꿨던 것이 어느 정도 이뤄진 삶. 꿈꾸면, 앞으로 또 허물어지고 이루어지는 무언가가 있겠지.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내가 나를 믿고 나아가면 무언가 또 보이겠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자꾸자꾸 하다 보면, 지금보다 또 훌쩍 커 있지 않을까. 아주 조금 설렌다.


미래의 나를 만나고 싶다. 좋은 오늘과, 내일모레, 차근차근 나아가 언젠가, 곧.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가요? 꼭 직업으로 하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에 계신가요?



그 일을 하고 있거나, 또는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나는 어떤 도움을 타인에게 받고 있나요? 그들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노력을 해왔나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과 기분이 드시나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으세요. 과거의 나보다 훌쩍 성장해 있는, 지금의 나와 편안한 밤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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