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13
벚꽃놀이를 하러 친구와 서울숲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길부터가 뭐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분명 왕십리에서 노란 분당선으로 갈아타서 서울숲역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됐는데, 어쩐지 이쯤에서 내리면 돼, 하고 내린 곳은 2호선 뚝섬역이었다. 그 사실도, 친구와 만나기로 한 출구로 나가면서 역 이름이 쓰여 있는 기둥을 보고 알아차렸다. 일단 초록색인 것에 왜 초록색이지 싶었고, 가타카나로 쓰인 아래 부분에서 여긴 서울숲이 아닌데 다행히 멀지는 않구나, 했다. 한두 역 지나쳐서 내리는 일은 있어도 호선을 착각하고 내리는 곳마저 어딘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않은 채 내린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스스로 치매인 건 아닌지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문 사건으로, 뇌에 이상이 있다기보다는 몸의 염증 수치가 조금 높아져 있는 상태의 영향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그때는 할 겨를도 없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마침 나온 출구 앞에서 서울숲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서 타고 갔다.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생각보다 크게 늦지는 않았다. 친구도 웃긴다면서 큰 실수는 아니었다고 넘겨주었다.
성수까지는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서울숲 안에 들어와 산책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벚꽃나무가 늘어선 길에서, 팝콘처럼 동그랗게 모여 핀 벚꽃들이 달린 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변함없이 예쁜 숲 속에서 하나 특이한 점은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여행 온 외국인들이 가는 곳들은 보통 쇼핑하기 좋기 상점이 많은 도심 한복판이나 고궁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고 서울숲까지 왔을까? 친구도 나도 의아해했다. 얘기 끝에 벚꽃을 보러 온 거겠지, 하고 결론을 내렸다. 이마저도 많은 벚꽃 핫 스팟들을 제치고 어떻게 서울숲까지 오게 되었을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생각과 달랐던 건 벚꽃 피는 시기와 뜻밖에 마주치게 된 외국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같이 사진을 찍는 일도 포함이었다. 타이머를 설정해 카메라를 울타리에 세워두고 찍었다. 첫 장은 구도도 엉성하고 포즈도 제각각이었는데, 여러 번 찍을수록 적정 거리와 어디에 서야 할지 답을 찾게 되고 서로의 포즈를 보면서 같은 포즈로 찍기도 했다. 겨우 사진 찍는 일이지만, 이 소소한 과정에서도 개선할 점을 찾아 반복하면서 점점 나아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을 보고 둘이 재미있어했다.
친구의 제안으로 벚꽃 나무 위쪽 다리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난감한 순간이 두어 번 있었다. 벚꽃이 겹겹으로 겹쳐진 난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애매하게 남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사진을 찍겠다는 나이 든 남자의 방해가 있었다. 그 사람은 아내가 사진 찍고 있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몇 차례 말리는데도 괜찮아, 하고 무작정 밀고 들어와 기어이 우리를 몰아내어 불쾌감을 남겼다. 이래서 사람 많은 데가 싫다고, 새삼 생각했다.
또 한 번은 다리 가운데서 난간을 독차지하고 벚꽃 감상에 빠진 외국인 남자였다. 이 사람의 경우 내게 피해를 준 건 없지만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을 혼자 널찍이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기다리다 못해 결국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도록 했다는 점에서 피로감 증대에 일조했다.
다리 위에서 인파를 겪고 나니 벗어나고 싶어져, 다리 바깥으로 빠져나오니 노란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친구가 애기똥풀이라고 알려준 꽃이었다. 벚꽃만 보다가 보니 또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친구를 찍는 동안, 마침 친구의 등 뒤로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던 외국인 남자가 너무나 큰 웃음을 선사하는 바람에 실례인 줄은 알면서도 혼자 한참을 웃었다. 너무 웃겨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뭔가 독특한 리듬감과 절도가 있는 춤사위였는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하고도 진지한, 그런데 흥에 겨운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작게 들려오는 음악은 외국 음악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을 뿐, 어떤 리듬의 어떤 느낌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춤꾼의 존재를 알려주자, 이번엔 친구가 나를 찍어주면서 한참을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등 뒤에서 최고로 흥에 겨운 춤판이 일어난 듯했다. 내가 그렇게 크게 소리 내어 오래 웃은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오래 알아온 친구가 그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에 봤다. 그의 춤사위가 잦아듦을 아쉬워하며, 자리를 떠나면서도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 춤사위를 흉내 내보면서 - 물론 그의 시야에서 멀어진 곳에서 - 한참을 웃었다. 아, 그 사람이 하필 우리 앞에서 춤을 춘 것은 당황스러웠지만 예상치 못한 큰 즐거움을 선물로 받았다.
어젯밤에 찾아둔 성수역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또 예상과 다른 여정이었다. 성수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는 서양식을 하는 곳이 많았지만, 몸에 염증이 있는 상태라 밥을 먹는 게 좋겠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해 밥집으로 갔다. 지도에서 알려준 최적의 경로대로 버스를 기다려서 탔는데, 다시 검색해 보니 다른 버스를 타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잠깐 정차한 덕에 우리는 내려서 다른 버스를 다시 기다렸다.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바로 전에 탔던 버스보다는 내려서 덜 걸어도 돼서 좋았다.
서울숲에서는 일찍 출발한 편이었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음식점에는 점심시간 한중간 즈음에 도착했다. 모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 웨이팅 예약을 했다. 마침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어 금방 앉을 수 있었다.
테이블이 다 찬 것 치고는 음식점 규모가 크지 않아서 괜찮았다. 고른 메뉴가 하나하나 다 독특하고 맛있었다.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니, 미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하는 작품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간이 훌쩍 갔다.
인기 많은 성수답게, 차를 마시러 간 카페도 만석이었다. 테라스에서 마침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일요일 낮인데, 음식점도 카페도 바로 자리가 나서 기다리거나 다른 곳에 가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차도 마시고, 빵도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회사 이야기, 친구의 친구의 회사에서 친구의 친구를 열받게 하는 동료 직원에 대한 이야기 (그쯤 되면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상, 창작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 꽃을 취미로 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분야이지만 창작을 하면서 느끼는 공통의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느낀 것은, 요 며칠 사이 몸을 콕콕 찌르는 듯한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와 같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왜 중요하고, 그의 존재와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나를 즐겁게, 건강하게 해 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일어날 때쯤 되니 어둑한 저녁이었다. 그래도 겨울을 지나니 아직은 조금 밝았다. 집에 돌아올 때는 역을 잘 보고 갈아타야 하는 곳에서 제 때 갈아탔다. 서울숲에서 신나게 찍었던 사진들을 친구가 보내주었다. 나를 찍어준 사진 중에는 머리에 벚꽃 잎이 떨어져 꽃핀을 꽂은 것 같은 사진이 있었다. 마음에 꼭 든다.
집에 와서 혼자 보내는 저녁 시간. 이 시간이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친구랑 웃고 떠들었던, 그리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공감했던 시간이 있어서일 것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능한 확보 해야 하지만, 이렇게 친구와 같이 일상의 일부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창작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지, 24시간 창작물을 찍어내는 기계는 아니니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오래오래 곁에서 내 편이 되어주고 꿈을 응원해 주는 친구에게 매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흘러간 하루였나요? 아니면 생각대로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나요? 그때,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셨는지 기억나시나요? 그 경험에서 감사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함께여서, 혹은 혼자여서 감사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었을까요?
모든 일이 마음처럼,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아요. 의외로 엉뚱하게 벌어지는 일에서 즐거움이 있기도 하죠. 어떻게 흘러갔든 찬찬히 돌아보며 감사한 부분을 발견해 보세요.
경험을 했던 순간엔 잘 모르고 지나갔지만, 그 뒤에 돌아보며 찾아낸 보물 같은 순간들의 반짝임을 다시 한번 되감아보며 아름다운 벚꽃 보듯 즐겨보세요.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으세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기분 좋은 일요일 밤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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