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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issay

4번째 하프마라톤이
깨닫게 해 준 삶의 가치

건강, 생명

by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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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 된 첫날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구급차를 타고 상급 병원으로 이동 중이란다. 몇 시간 뒤 입과 코에 호스를 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하루도 안 지난 그놈이 뭘 안다고 입과 코에 호스를 물어야 하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형과 나는 우애가 깊었기에 내 자식 마냥 더욱 힘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4번째 하프 마라톤 대회는 너무나 기다렸고 기다렸던 대회였지만 지난 3개월간 직장생활 그리고 인간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이어진 과음의 시간들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졌던지라 마지막까지 참가를 망설였던 대회였다.

하지만 삼촌으로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나누고 싶었고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낫길 바라는 마음에 끝내 참가하게 되었다. 하프 마라톤이 처음이 아닌지라 경험적으로 몸 상태를 체크하며 오늘은 분명 힘든 레이스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대회 장소를 향해 무겁지만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1*m6SRFRaoQbaPbhLfh6_gVA.png 하남 미사 조정 경기장

대회 일정은 07:00 안내방송, 07:32 국민의례, 07:40 대회사, 07:50 준비운동, 08:00 10km 출발, 09:15 Half 출발이었다. 풍속은 2m/s, 평균기온은 20도였다. 생각해보니 지난 3번의 하프 마라톤 대회는 모두 가을과 겨울에 진행되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 21.195km를 뛰는 적은 처음이었다.

4번째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는 Sub-2 목표를 지니고 있었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은 지나온 과정에 있지, 결과를 내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욕심을 버리고 완주를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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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열린 대회인지라 대회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모두들 각자의 레이스를 준비했다. 10km 마지막 참가자가 결승점을 통과하고 몇 분 뒤 하프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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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6km, 1회전만 남은 상태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다. 기록은 예상대로 600 페이스를 훌쩍 넘어갔고 지난 3번의 하프 마라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처음으로 오늘 완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을 때의 순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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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m를 쉬지 않고 뛰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저마다 다른 목표와 마음 가짐으로 달려왔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마라톤을 하면서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걷고 싶은 순간은 늘 있었지만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끝까지 천천히라도 뛰었었다. 그것이 마라톤을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뛰지 말았어야 할 대회에 참가한 내 몫이었고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불필요한 감정 낭비로 인해 몸이 정말 많이 나빠진걸 몸소 느꼈던 대회였고 마지막 급수 지점에서 4km를 남겨두고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서 걷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저 사람들은 4km 밖에 남지 않았는데 걷고 있을까, 누군가는 얼굴에 미소를,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을 자책하는 듯 보였다. 나는 지금 어떠한 감정일까 생각해봤지만 몸이 너무 아픈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남은 4km를 어떻게 걸어갈까 싶었고 그냥 구급차를 타고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다.


주로를 통제하는 관계자분이 탄 오토바이에서 구급차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순간 복덩이가 떠올랐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상급 병원으로 이송된 복덩이는 구급차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혹시나 내가 참고 완주하면 복덩이에게 좋은 소식이 들릴까 하고서. 그리고 끝내 완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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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보다 20분가량 늦춰진 기록이었지만 이번 대회는 정말 삶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준 값진 대회였다. 마라톤을 하면서 처음으로 걸었고 다시 뛰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걷지 않겠다는 말은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깊은 울림 중 하나다.

끝내 걸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했다. 걷는 것은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었다는 것은 그보다 삶에서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생명의 소중함이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지 못하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값진 성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잠시 쉬지 않고 계속 뛰다가는 정말 몸에 이상이 생길 것 같은 위기를 처음 느꼈고, 끝내 본능을 택했다.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아주 잠시나마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지난 마라톤 대회를 추억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에서는 얻을 수 없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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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점을 통과하고 감기 증상과 더불어 마라톤을 끝마치면 늘 찾아오는 아픔이 시작됐다. 남은 거라곤 이름과 기록이 각인된 완주 메달뿐이었지만 다시 뛸 수 있게 해 준 복덩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절뚝거리며 5km가량 떨어진 집으로 돌아가던 중 형에게 한통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온 메시지였다. 눈뜨고 하품도 하고 잘 자고 배고플 때는 깨어난단다. 처음보다 호흡도 편안해 보이고 좋아지고 있어서 호흡기도 곧 제거한단다. 다행이고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산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생명의 소중함이란 걸 몸소 느꼈던 소중하고 값진 대회였다. 오늘의 목표였던 서브 2는 5번째 대회로 미뤄졌지만 지난 대회에선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을 얻게 되어 기록보다 더 값진 대회였다. 서브 2는 그냥 계속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잃어버린 건강과 생명에는 다음이 없다. 오늘의 순간과 감정을 늘 되새기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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