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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an 31. 2022

그 많던 얼룩이 향한 곳은 엄마였다

스무살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만큼을 혼자 살면서 나는 엄마가 없어서 내가 이토록 슬픈 것이라고 굳건히 믿어왔다. 하늘이 예뻐서 한없이 기쁘다가도, 아이들 어린냥에 세상 다가진 듯 행복하다가도 어떤 순간에 불현듯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마는 까닭은, 내 마음에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곤 했으니까.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모든 장면들은, 설사 그것이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이라 해도, 내게 그것은 아련함이었고 부러움이었으니까.

 

슬픔, 외로움, 거절감 같은 누구나 겪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쉬이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감정이 찾아올 때면,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간 사는 게 쉽지 않다

싶을 때면 나는 '엄.마.가.... 없.어.서...' 라는

이유를 곱씹었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타당함을 입었고

나는 금세 그 모든 감정들을 누릴 자격이 생기곤 했다.




돌아보면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엄마가 없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한 적도 없고,

굳이 하소연을 할 생각도 않고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렇게 애를 써 본들 공감받기 쉽지 않고

도리어 동정이나 받기 십상이니 차라리 가슴에 품고 사는 게 낫다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일면 진실이었다.



꾹꾹 눌러 담아 놓은 말들이 많아서였을까

내 뜻과 상관없이 생각이 흘러가고 흘러가다 보면 기어이 깊은 한숨을 내 쉬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종종 가슴이 답답했다. 그랬다. 가슴 깊은 곳에 화산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를, 무언가 살며시 건들면 펑하고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질

슬픔의 화산.


그 화산을 막으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십여 년간 놓았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면 계기였다.


 

'상실'이라는 주제로 틈만 나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던

나만 알고 있는 구질구질했던

상실의 시간들을 써내려 갔다.

글을 쓰면서, 또 다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후련해졌다.

화산 꼭대기에서 찰랑이던 눈물과 슬픔이 그렇게 말라가나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상실에 대해 실컷 말하고 나니,

그 몫의 슬픔이 충분히 다뤄지고 나니,

전혀 다른 슬픔이 나타났다.


그랬다. 상실은 다만 보이는 문제였을 뿐.

내 마음의 슬픔은 이미 그 이전에... 엄마가 내 옆에 있었던 그 시간들에 생겼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를 잃고 슬픔에 허덕이던 스무살의 나를 달래고 도닥여 보내고 났더니, 갑자기 어디선가 어린아이 하나가 나타났다.


매일 엄마 주변을 맴돌고 바라보고 또 기다리면서 그러나 결코 엄마에게 한 걸음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슬펐던 시절. 일곱살 무렵의 내가 화산 깊은 곳에 살며 내 인생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아 이 많은 슬픔이 그때로부터 왔구나....

아 이 많은 슬픔이 엄마로부터 왔구나....

이 말을 곱씹으며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나도 엄마가 되었기에,

엄마라는 그 두 글자의 무게를 알기에

차라리 엄마를 대변하고 싶기도 했다.


그게 어째서 엄마 탓이냐고...

엄마는 그 힘든 중에도 나를 위해 그 고생을 하셨다고....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 했다고...

정말 좋은 엄마였다고....



그러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엄마를 대변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잘 안다.


엄마의 착한 마음씨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성품과, 성실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살뜰함을.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그게 무엇이든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나와 엄마, 그 사이에서만 드러나곤 했던 엄마의 일관성 없음과 냉담함, 무심함, 짜증스러움도 잘 알고 있다.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챙기느라 정작 내겐 그러질 못했던, 너는 좀 네가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니 하고 바랐던 엄마의 그 이중성도.

.


사람들은 모두 엄마를 칭찬했지만, 정작 엄마의 딸은 외로웠고 슬펐다.


그러나 어렸던 나는 이 모든 것이 덮어두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한 번 대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것이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고, 보호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자책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도 같다.


그 결론은

내 마음에 깊고 진한 얼룩을 남겼다.



엄마가,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두 모습을 가졌고,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할지라도 나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리고 엄마도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와서,

굳이 알곱살의 기억을 떠올리며,

덮어두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어 써야만 하는 까닭은 이제라도 그만 그 감정들을 놓아주려는 작은 몸부림이다. 내게 남긴 가장 깊고 진한 그 얼룩을 매만져주려는 작은 노력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옹이로부터 망설임 없이 걸어 나와 나 답게 꽃을 피우며 살아보겠노라는 간절함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다.


내 마음속 작은 얼룩들을 기어이 찾아내고 마주하고 닦아내며 마음껏 엄마를 고발해야지. 내가 엄마에게 원했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도 다 쏟아내야지.

 


그러고 나서 모든 걸 훌훌 털고

다시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해 볼 생각이다.

비록 내 모든 얼룩이 엄마를 향해 있었다 할 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엄마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싶다.


그것만이 내 진심이다.

일곱살에도, 스무살에도, 그리고 지금도...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장미와 가시> -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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