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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01. 2021

어느 시절과의 작별, 그리고 만남


달빛을 쫓아가듯이 밤을 사랑하는 시절이 있다. 깔깔대며 춤을 추고, 외로운 마음에 흠뻑 취하고,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세계가 되는 시절이 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남김없이,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찾고, 그렇게 국경을 넘고, 잠을 잊고, 달려가는 나날이 있다. 저마다 시절에는, 그 나름의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기도 하지만, 유난히 어느 시절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지켜주고 싶고, 반대로 어느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뼛속같이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빼곡히 들어찬다. 


만약 그런 마음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 시절은, 혹은 이 시절은 그만큼 한줌 놓치기 아까운 나날들일 것이다. 삶은 한편으로는 평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평등해서, 유난히 더 아름다운 나날이라는 것이 있다. 유난히 더 아까운 마음, 아쉬운 마음의 시절이 있다. 그런 시절 중 하나는, 외로움으로 가득차고, 그래서 밤과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홀로 있음이 무한한 예감으로 채워지는 때일 것이다. 나를 간신히 사랑하면서, 그 누군가를, 삶을 믿고자 애쓰는 시절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다. 


인생에서 그런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다소 안정적으로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때가 오기도 하는 듯하다. 아주 간절하고 폭발할 것 같은 마음과, 외로움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예감을 믿고 따르던 마음이 지나가면, 밭을 일구듯이, 밤보다는 낮을 사랑하고, 함께 단단한 땅을 고르고 만들어나가듯이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시절도 있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낮의 시절에 있는 듯하고, 종종 밤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시절의 마음이라는 걸 기억할 수는 있어도, 삶의 영역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건 참 이상한 일인데, 내가 그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으로 오늘 밤을 가득 채우면, 다시 '그때의 그 밤'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설령 그렇게 믿는다 하더라도, 그 시절이라는 것은 하룻밤의 꿈처럼 금방 떠나가는 일이 된다. 아마 삶이란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삶이란 그리워할 만한 마음들을 부지런히 쌓아가면서, 채워가고, 또 건너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저 어느 시절들에나 있기 마련인, 그 시절 나름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간산히 그러모아쥐고, 한쪽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서, 과감하게 또 다음의 시절로 건너가는 일들이 인생 내내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살아가는 모든 나날들이 저마다의 방식의 어떤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아마 그런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는 삶이라면, 좋은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자기의 삶들에 그리워할만한 구석들을 남겨두고,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 어떤 마음의 여지들이 삶 속에 남아있다는 증거 같은 게 되지 않나 싶다. 그렇게 어느 시절의 달빛과, 춤과, 음악과, 어느 오후의 눈밭과, 웃음과, 노동과, 어느 사람들을 양쪽 호주머니에 가득 담고서, 어느 시절들과는 작별을 고하며, 다시 어느 시절들을 맞이하며,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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