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에 실린 프로필 사진은 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골라준 것이다. 아내에게 이 사진이 실린다고 하자, 아내는 빵 터지며 잠깐 웃었다. 약간 옛날 사진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사진을 찍어준 게 아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진으로만 보면,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내가 들고 있는 건 로스쿨 때의 문제집이다. 손에는 그 문제집을 푸는 샤프가 들려 있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어딜 가나 문제집과 샤프를 들고 다녔다. 카페를 가든, 바다를 가든, 호텔을 가든 내가 보는 건 언제나 문제집 뿐이었다. 로스쿨 3년 동안 나의 독서 기록은 거의 중단되고 말았는데, 본 것이라곤 법학 교과서와 문제집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도 동네 카페에 가서 문제집 풀다가, 아내가 잠깐 자기 보라고 해서 고개를 돌린 사이 아내가 찍어준 것이다. 출판사 대표님이 볼 때는, 이 사진이 제일 괜찮았나 보다 싶다.
어쩌면 당시의 내 사진이랄 것에, 일종의 간절한 진심 같은 것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인상 잔뜩 쓰고 문제 푸는 데 몰입하다가, 아내가 잠깐 보라고 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표정은 완전히 풀리지 않고, 어딘지 새침해 보이게 나온 이 사진에, 나의 한 시절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식으로 애쓰는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더 나은 시절로 향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여 어디에서건 자신의 문제에 몰입할 수 있는 절실한 집중력 같은 게 생기기도 하는 때 말이다.
대표님은 모르고 골랐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사진은 이번 책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와도 참 어울리는 데가 있다. 가장 절실하게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시절,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마음을 다잡고, 또 어떤 원칙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낼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게 이 책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가장 최근의 신간이지만, 동시에 이 책에 실린 이 사진이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또 나의 한 시절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채워지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내 손에 책을 잡지도 못했는데 머지않아 이 모든 일들도 추억이 되겠구나, 싶다. 그렇게 마음은 때론 현실보다 한참 앞서나가곤 한다. 그렇지만 아마 당분간은 추억이 되기 전에, 바쁜 날들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책이 누군가에게 닿고, 또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전하고, 책이 만들어줄 인연들과 함께하느라 한 시절이 바삐 흐를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앞서 간 마음과 만나 마땅히 추억이 될 그럴 시절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