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과 화성행궁에 다녀왔다. 오로지 걷기가 목적. 집 앞에서 한 번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마침맞았다. 지하철보단 버스가, 환승보다는 직행을 선호하는 나에게 있어 이는 목적지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인왕산 자락길과 환기미술관을 가려고 했었으니까.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을 받으려면 걷기가 제격이다.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까지 찌르르하게 전해지는 심장의 부드러운 펌프질. 온몸에 산소가 도는 느낌을 받기에도 걷기가 제격이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일어나는 내 몸의 변화를 가만가만 즐기기에 적당하다. 오로지 걷기가 목적이라는 말은 사실 반은 거짓말이다. 그 기저에는 건강에 대한 내 태도가 깔려 있다.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 같은 거. 이때에는 마음보다 몸이 앞선다. '오늘은 날씨도 적당하니 밖에 나가 햇볕도 쬐고 숨도 크게 들이쉬며 기분 좋게 노곤할 때까지 걸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신발을 꿰어 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깔려 있는 건강에 대한 내 태도. 마음보다 몸이다. 정말, 마음보다 몸이다.
아픈 게 싫다. 몸이 아픈 게 싫다. 물론 마음이 아픈 것도 싫지만, 그 이유는 결국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건사하기 시작하면서 1년에 한두 번씩은 대차게 앓곤 하는데, 그 통증은 공포를 동반한다. 내가 나에게 소홀한 어느 순간에 나쁜 것이 외부로부터 침입하거나 내부에서부터 자생해, 온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격, 그로 인해 짓무르고 으깨지고 비틀리고 찢어지면서 생기는 오한-발열-어지러움-메스꺼움-구토-설사-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통증은 매번 비약적이고 생경한 공포가 된다. 울어도 소용없고 빌어도 소용없다. 사라질 때까지 찰나든 억겁이든 견딜 수밖에.
생로병사 중에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그래서 '병'이다. '병'만 없으면 '생'과 '로'와 '사'는 할만한 것이 된다. 병 없이 태어났으니 그중 하나는 성공했는데 병 없이 늙다가 병 없이 죽는 건 작금의 내가 하기 달렸으나, 염려의 크기가 참 무색하게도 무병의 삶을 위해 딱히 하고 있는 건 없음. 그래도 걷기는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건강에 대한 내 태도 외에 걷기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서 꾸준히 하는 편이다. 마침 동네에는 탄천이 흐르고, 천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견공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다. 마음 내키면 성곽길이든 둘레길이든 적당한 곳을 찾아가면 그만. 걷고자 하는 사람이든 그 마음을 헤아려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사람이든 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