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자취방은 세 네 평 남짓한 서울 대학가 원룸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 내 방보다 작았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삼수 끝에 간절히 원하던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심리학도가 된다는 게 설레기만 했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며 오가는 시간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도 기대되어 좁은 방은 문제되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 종일 연구실 생활을 할 예정이기도 했다. 세탁기가 공용인 것도, 가스레인지가 없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취방 구조는 좀 특이했는데, 방 한쪽에는 천장부터 가슴 정도 높이까지 오는 불투명 창이 나 있었다. 창밖으로는 좁은 베란다가 있었고, 베란다 창마저 불투명 시트지가 붙어있었다. 의자를 창문 밑으로 가져와 창틀을 넘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다시 방 안으로 넘어오는 수고를 하기 전까지는 바깥 날씨를 알 수 없는 구조였다.
어떤 일요일 아침에는 나만 홀로 외딴 곳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때때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밖에서 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터운 대문 안 내 자취방은 내 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누구라도 나를 찾아오거나 연락해주기를 기다리다가 먼저 문밖을 나서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며 외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일요일이 외로운 건 작고 적막한 자취방에 혼자 사는 탓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서울과 성남, 고양시를 떠돌며 몇 년 간 자취생활을 마치고 다시 부천에 있는 본가로 돌아와 가족들과 살았을 때도 난 종종 외로웠다. 자취를 할 땐 혼자 살아서 외로운 줄로만 알았는데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외로웠다. 전 남편에게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혼을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내가 혼자 살면 더 외로워질까 봐.
신혼집 전세자금을 빼고 얼마간의 대출을 더해 오래되고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다행히도 이 집의 창은 모두 크고 투명하다. 남향이라 요즘 같이 늦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부터 겨울까지 해가 집 안으로 깊이 들어오기까지 한다. 이혼 후 본가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이러나저러나 외로울 게 분명하니 혼자 편하게 살고 싶어서였는데, 내 염려와는 달리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롭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일과를 마치고 쉴 때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간혹 있지만, 그 생각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대화하는 것보다 혼자 고요히 쉬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마저도 홀로 하는 1인 사업자이기도 하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밥도 삼시세끼 혼자 먹는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외롭지 않다는 건 참 신기할 노릇이다. 물론 사람을 만나는 심리상담 일을 하지만, 대화 주제는 늘 그들의 것이고, 내 생각이나 경험을 떠오르는 데로 말할 순 없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씨 얘기 같은 가벼운 얘기를 건네기도 하지만, 심리 상담을 하는 50분은 온전히 내담자를 위한, 그들이 변화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결심하면서 인생이 무너진 것 같았을 때 힘이 되었던 건 사람들이 전해주는 온기였다. 우울감에 잠식되어 있었을 때 엄마는 일이 끝난 후 늘 나를 찾아왔다. 소식을 알리자 친구 K는 그날 바로 오후 반차를 쓰고 오겠다고 했다. K의 직장과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편도 두 시간, 왕복 네 시간이 걸린다. 친구 Y는 늦은 저녁,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부랴부랴 찾아왔다. 그들은 주저앉아 있는 내 옆으로 와 나를 홀로 두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보살펴주었다. 억지로 힘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냐고, 밥은 먹었냐고, 잠은 잘 자냐고 물어봐주었다. 나가서 햇빛도 쐬고 산책이라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집에서도 예쁜 꽃을 볼 수 있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그 꽃을 보니 밖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들 덕분에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나뭇가지에는 초록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내가 곤경에 처하거나 외로울 때 언제든 달려와 줄 거라는 걸 안다. 사실 지난 세월들 중 외롭다고 느꼈던 순간에도 그들은 늘 내 근처에 있었다. 미처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가 천성이 외로운 사람인가 자조했던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어 외로운 것도 아니었다. 외로움은 혼자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힘들기 전에도 그들이 늘 내 곁에 이렇게도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내가 좀 더 그들에게 의지했다면 그전부터 외롭지 않았을 텐데. 나란 사람은 늘 늦게 깨닫는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