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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Dec 19. 2023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야

  우울증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찾아온다. 어떤 사람들은 괴롭게 하는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다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또 어떤 이들은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살지 못해 우울해지기도 한다. 삶이 나아질 방법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증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혼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레 우울증이 찾아왔다. 



  결혼하여 남편과 오순도순 자식을 키우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길 꿈꾸던 난,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벌어진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전까지는 나와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뉴스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종류의 일 말이다. 불륜 같은 일이었어도 충격은 컸겠지만 차라리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었기에 그 문제를 알게 된 타격은 컸고 혼란스러웠다. 


  이혼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혼을 한다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여겼던,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을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문제는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무기력했다. 무기력감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왔다. 자꾸 우울한 기분에 빠지고 집중이 어려워지니 그토록 좋아했던 심리상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상담소 문을 닫고 쉬었다. 그렇게 쉬면서 차근차근 내 마음을 살펴보고 돌보았다. 우울증 약을 먹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어떤 길로 들어섰는데 길이 막혀있다면, 돌아 나와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굳이 막혀 있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땅을 파고 공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사를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모조리 써버리고 나면, 정작 내 삶에서는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경험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막다른 길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돌아가기엔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웠고, 그렇다고 막힌 길을 뚫고 가보자니 험난할 게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사랑에 힘을 입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돌아나가서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혼을 결심했다. 



  나를 괴롭게 했던 문제를 점차 해결해나갔다. 별거를 요청했고, 이혼하자고도 말했다. 귀책사유가 있는 그에게 위자료를 청구했고, 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밟았다. 꿈꿔왔던 결혼 생활을 앞으로 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종류의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를 괴롭히는 일에서는 이제 해방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예상과는 달리 작은 일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크게 흔들렸다. 가족들과의 소소한 말다툼 끝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우울증의 여러 가지 증상 중 하나는 식욕이 크게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엔 두세 달 만에 10kg 넘게 살이 찌고 말았다. 이제 다 끝났으니 내 몸을 원상복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벼운 운동과 식이조절 만으로도 장염과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과 몸이 모두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러 번화가에 갔는데, 지하철 출구를 나가자마자 넘치는 인파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던 어떤 날에도 문득, 내 반려견 꼬미도 수명을 다하고 부모님마저 세상에 없다면, 그땐 나에게 살 이유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우울증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나아져야 했는데, 우울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자꾸만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그 흔한 말이 맞는다면 약 먹고 며칠 정도 몸 따뜻하게 하면서 푹 쉬고 잘 먹으면 금방 나아야 했다. 아무리 독한 감기가 걸린다고 해도 치료 받고 몸을 잘 챙기면 몇 주 내로 낫는다. 다시 금방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았다. 심리적인 충격이 남긴 타격은 계속해서 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고 몸과 정신건강을 잘 챙기는 것만으로는 곧바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차리고 수용할 수 있어야 점차 물 흐르듯이 사라질 수 있는데, 우울증은 감기라는 말은 오히려 내 힘든 감정이 부정당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감기 같은 거라면 계속 힘들어할 게 아니라 빨리 기운 차리고 일어나야 하니까.



  우울증은 감기라는 말 대신, ‘우울증은 마음의 교통사고’라는 말로 바꾸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교통사고를 겪을 위험이 높은 것처럼, 심리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도 쉽다. 그렇지만 아무리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조심성 있는 사람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교통사고로 어딘가가 심하게 골절되었다면 수술을 받는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뼈가 붙을 때까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야 한다. 뼈가 붙은 뒤에는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한다. 그 다음엔 조금 더 긴 거리를 걸어보기도 하고, 속도를 내보기도 한다. 그렇게 재활을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난 뒤에 수술이 끝났다고 해도, 사고 전처럼 바로 빠르게 뛰거나 등산을 할 순 없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심한 심리적 충격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재활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도 회복된다. 교통사고가 난 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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