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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Dec 29. 2023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1층 아파트 입구 밖에서 이쪽을 향해 바쁘게 걸어오는 한 중년 여성이 보인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우두커니 서서 문이 서서히 닫히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점차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닫히려는 그때, 누군가의 급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문이 다시 열렸다. 복도식 아파트의 다른 방향 입구에서 온 사람이었다. 멀리 있었던 아주머니도 어느새 근처까지 와 있어서 빨리 뛰어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주머니는 13층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얼굴을 보니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오가는 길에 몇 번이나 마주쳐서 인사도 나누고, 강아지 얘기도 하고, 집 인테리어 얘기도 했던 이웃이다. 노후화된 아파트라 층간소음에 취약하기에 내 발소리가 시끄럽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도 아주머니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 정도야 뭐, 사람 사는 데 소리가 안날 수 있나. 괜찮아요.” 


  이번에는 여느 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는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몇 초 기다려주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멀리서 사람이 오는 걸 보고도 못 본 척했을까. 며칠 동안 문득문득 그 일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부끄러웠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오래도록 생각해보았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며칠 전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멀리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오는 할머니는 “같이 가요.”라고 외치며 올라가려던 나를 붙잡았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다급해보였지만 다가오는 속도는 다급함과 비례하지는 못했다. 나도 느긋하게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기다렸고, 할머니는 천천히 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나 문이 닫히기 전 아파트 입구 쪽 우편함에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할머니는 나를 향해 다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줘요.”


  할머니는 빠르지 못한 걸음을 떼면서 우편함으로 향했다. 우편물이 꽂힌 곳에 잠시 멈춰선 걸 보니 자신의 우편함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듯 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돌아오지는 않고 본인 호수에 해당하는 우편함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의 우편함에 아무 것도 없는 걸 보고도 우편함 문을 열어 확인까지 하면서 입으로는 엘리베이터를 붙잡아두려는 요량으로 “잠깐만요.”를 간간히 외쳤다. 우편함을 확인하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돌아와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난 그 미소에 같이 웃을 수 없었다. 멀리서 엘리베이터까지 오는 시간만큼 기다려주었던 걸, 할머니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급하지 않은 볼일을 보고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구한 게 아닌가. 


  이런 일을 겪으면 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도와주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난 상처받는다. 선선하게 품었던 친절과 호의를 도로 빼앗아서 감춰버리고 싶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 따위 없었던 양. 그런데, 그러면 내 마음의 크기마저도 작아진다. 모두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풀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주 조금만. 그렇기에 그 다음 엘리베이터에서는 열림 버튼을 눌러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작은 호의를 베풀지 않고 나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끄러웠다. 나조차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을 때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앞 사람으로 인해서 수월하게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이웃이 있어서 하루에 한 번 더 웃을 수 있다. 산책을 할 때 내 강아지가 예쁘다는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진다. 별 거 아닌 것들을 주고받는 순간, 그것이 별 거가 된다.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어제 나의 상담소에 와서 종합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받고 간 수검자가 보낸 메일이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긴장하는 까닭에 자신의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해석 상담 시간에도 그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때로는 짧은 한 문장을 끝마치는 것도 버거워보였다. 말하는 내내 그는 가끔씩만 나를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해석상담은 심리상담과 달리 단회성으로 진행되기에 검사 결과만 일방적으로 설명해주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그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랬기에 그가 말하지 않을 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었고, 괜찮다고 미소 지으며 다독이기도 했다.

 

  그가 보낸 메일에는 내 미소 덕분에 말할 용기가 났다고 고맙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 용기에 힘입어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실천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상대를 배려하려고 했던 내 작은 마음이 그에게는 더욱 크게 전달된 듯 했다. 내가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그를 위해 희생하거나 봉사했던 것도 아닌데,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이 느껴졌고 뿌듯했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나는 별 거 아닌 것들을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때로 마음이 쪼그라들지라도 다시 한 번 마음을 크게 부풀려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고 싶다. 내 마음이 따뜻함과 친절함으로 가득하지는 않을지라도, 친절한 행동과 태도를 취하고 싶다. 그러한 것들이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에 가까워지도록 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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