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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Jan 16. 2024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얼마 전 중학생이던 조카가 졸업을 했다. 나는 졸업식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졸업식이 끝난 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점심 식사 자리에는 참석했다. 조카가 평소 좋아하던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졸업식은 어땠는지, 졸업한 기분은 어떤지를 물었다. 조카는 잠시 골똘하더니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했다. 아쉽다거나 슬픈 느낌도 딱히 들지 않는다 했다. 왜 감정을 못 느낀 걸까, 노파심이 들어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 묻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어때보였어?”, “같은 반에는 운 친구들 없었어?” 마지막에 인사하면서 아쉬움을 표현하던 친구들은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친구까지는 없었다고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 복도나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에도 우는 애를 보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내가 졸업했을 때와는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각 반에 한두 명은 졸업식 날 눈물을 보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든 친구들,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것에 대해 크게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왜 이렇게 느끼는 게 다른 걸까 생각하다가 코로나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중학교에 입학한 이 아이들은 오랫동안 같은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조그맣고 평평한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만났을 것이다. 어떤 기간 동안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 다 같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교대로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한동안은 투명 칸막이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밥을 먹었다. 짝꿍 없이 외딴 섬처럼.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저도 친구들과의 잡담은 지양됐다. 마스크에 의해 반쯤 가려진 얼굴에서는 서로의 표정을 보고 느끼기도 어려웠을 거다. 이런 중학교시기를 거치며 조카와 또래들이 쌓아온 유대감의 깊이는 과거 우리들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다. 이들이 졸업식이라는 중대한 행사에 큰 감흥이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을지라도 이상 기후 나 환경오염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안다. 코로나로 인해서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유대감이라든가 추억 같은 소중한 것들을 쌓을 기회를 번번이 놓쳤고, 어린 아기들은 사람 입모양과 얼굴 근육을 보고 언어와 감정을 학습하고 소통할 기회를 놓쳤다. 이제는 엔데믹 형국에 들어서서 다시 마스크를 잘 쓰지 않게 되었고, 학교도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놓친 기회는 이제라도 붙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안도해도 정말로 괜찮은 건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지금처럼 탄소배출량이 높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곧 겨울은 한 달 정도로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질 거라는 기사를 봤다.주1) 등이 서늘해진다. 눈 오는 풍경을 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고, 내 생이 끝나기 전에 김초엽 작가의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거대한 돔 속 세상이나 지하세계에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며 아찔한 기분이 든다.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일과 중 한 업무를 마치고 다른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밖으로 나가 산책하는 일은 머릿속을 환기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후 산책을 하지 못했다면 해가 지기 전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하늘의 한 쪽만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반대편부터 점차 어둠으로 뒤덮이는 황홀한 광경을 보기 위해서다. 계절에 따라 나뭇잎 색깔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파란 하늘과 떠다니는 구름을 관찰하는 것도 모두 아름답다. 새들의 지저귐은 때로 중창처럼 들린다. 내가 구태여 캠핑에 가서 텐트를 치고 짐을 옮기고 다음날 아침엔 다시 텐트를 허무는 고생을 하는 연유도 자연 속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감사해진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내 눈과 귀와 뇌에 고맙고, 삶이 행복해진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기후 위기가 계속된다면, 세상 도처에 널린 아름다움은 과거의 것들로만 남을지 모른다. 자연이 잘 보존되는 곳은 얼마 남지 않아, 돈 많은 일부 계층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이어진다. 감염될 걱정 없이 친구를 직접 만나 사귀는 것도 어쩌면 영영 어려운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따져 봐도 부자가 될 리도 없고, 지구의 많은 것들을 바꿀 만한 힘도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플라스틱 통에 든 샴푸 대신 비누 형태로 된 샴푸 바, 린스 바로 바꾼다. 쓰던 플라스틱 칫솔이 망가지고 나면 대나무 칫솔로 바꾸어 둔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는 반찬을 사기 보다는 식재료를 사서 직접 반찬을 만든다. 차를 모는 대신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편을 택한다. 육류 섭취를 줄이고 비건 지향식을 해 본다.

  사실 고백하자면 많은 부분에서는 빈번히 실패한다. 샴푸 바를 쓰다가도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가 더 좋아 보이는 어떤 날에는 그런 샴푸를 산다. 바쁘고 몸을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은 날에는 배달 음식을 시키기도 하고 반찬 가게에서 파는 반찬들을 사오기도 한다. 시간이 없거나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피하고 싶은 날이면 대중교통 대신 차를 운전한다. 비건 지향식은 1년 반 정도 실천하다가, 꼼꼼하게 식단을 챙기지 못하는 탓에 탄수화물 섭취량만 너무 늘어서 잠시 멈추고 있다. 그렇지만 다이어트를 실패하고도 매번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조금씩 건강한 몸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결심과 시도가 쌓인다면,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단지 하루라도, 한 시간 만이라도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더 누릴 수 있지는 않을까? 비록 지구의 많은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바꿀 순 없을지라도. 





주 1) 신소윤, 기민도. (2024년 1월 15일). 짧아지는 ‘강원도의 겨울’... 25년 된 빙어축제 물에 잠겼다. 한겨레신문, p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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