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에서 깨면 가까운 데에서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린다. 반려견 꼬미가 자고 있는 소리다. 다리 옆에서 들릴 때도 있고, 침대 밑 어딘가에서 들릴 때도 있는데, 오늘은 내 등 뒤다. 등 뒤로 따듯한 감촉과 약간의 무게감과 함께 움찔하는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내 작게 월월 소리가 들린다. 월월... 으르릉.. 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소리를 낸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잠꼬대를 하는 거다. 자면서 어딘가를 달려가는 듯 네 다리를 공중에 휘저을 때도 있다. 아마도 신나게 노는 꿈을 꾸는 모양이다. 꼬미는 깨어있을 때보다 꿈속에서 더 많이 짖는다.
잠에서 깬 상태 그대로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꼬미도 어느새 내가 잠에서 깼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앞으로 건너와서 꼬리를 마구 흔들며 내 얼굴을 핥기 시작한다. 마치 오랜만에 본 것처럼. 아침 알람 소리가 들린 후에도 내가 뒤척인 후 일어나지 않거나, 잠에서 깼는데도 누워있으면 이렇게 나를 깨운다. 아침에 다시 봐도 이렇게 내가 좋은가 싶어서 내심 흐뭇했는데, 어느 주말엔 아침밥을 챙겨주고 다시 침대에 누우니 반가운 괴롭힘은 더 이상 없었다. 이런. 꼬미가 가장 기다렸던 건 잠에서 깬 내가 아니라 아침밥이었을지도.
꼬미 아침밥을 챙겨주고 내가 마실 커피를 내린다.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흘러나오는 동안 이불정리도 하고, 어제 설거지를 한 뒤 식기건조대에 말려둔 컵이나 그릇들도 수납장에 옮겨둔다. 새벽에 현관 앞으로 배달 온 일간지를 가지고, 커피도 챙겨 쇼파에 앉는다. 집이 좁아서 1인용 쇼파를 두었는데, 꼬미도 나를 따라와 좁은 쇼파에 굳이 끼어 앉는다. 그러다 내가 책상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면 꼬미는 자리로 돌아가 잠을 잔다. 꼬미의 방석 보다는 내 침대가 더 마음에 드는 듯하다. 침대에서도 개어진 이불 위, 베개 위처럼 푹신한 곳에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어쩔 땐 베개를 머리에 베고 이불을 덮은 것처럼 이불 사이로 들어가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꼬미도 잠에서 깨어 나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돌린다.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방에서 나오면, 꼬미는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침대 밑으로 도망갈 준비를 한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는 거다. 산책을 좋아하면서도 겁이 많아서 밖으로 나가려는 채비를 하면 늘 침대 밑으로 숨는다. 꼬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려면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가야 한다. 마치 첩보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서 도망갈 퇴로가 막힌 꼬미는 ‘산책 가자’라는 말에 마치 움직이는 방법을 잊은 듯 꼼짝하지 않고 굳어있다.
막상 꼬미를 안아 하네스를 채우고 산책에 나가면 그때부터 꼬미의 텐션은 달라진다.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대면서 꼬리도 통통 흔든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씨에 산책을 나가면 그 씰룩거림이 더욱 커진다. 나도 해가 있을 때 나가는 산책이 좋다. 그러나 다른 개가 눈에 보이면 꼬미는 언제나 내 다리 뒤로 숨는다. 그 개가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꼬미는 하네스에 연결된 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멀리 달아나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티비를 켜고 쇼파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꼬미 놀이시간이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앞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피고는 장난감 공을 물어 온다. 공을 내 다리 위에 가져다 놓고는 던지라는 듯 쳐다본다. 모른 척을 하면 앞발로 툭툭 내 다리를 친다. 꼬미의 성화에 공을 던지면 그 작은 입으로 날아오는 공을 잘도 잡는다. 마치 공과 꼬미의 입에 자석이 붙어있는 것 같다. 공을 물고 내 앞으로 가져오지만 바로 입에서 놓지 않을 때가 있다. 공을 잡아당겨 터그 놀이를 하자는 신호다. 그럴 땐 장난감 공을 좌우로 흔들면서 잡아당겨야 한다. 내가 놓치면 다시 공을 가져와서 내 앞에 둔다. 이제는 던지라는 얘기다.
그렇게 공놀이와 터그놀이를 번갈아하다가 다시 내가 쇼파로 돌아와 앉으면 꼬미도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엎드려 쉰다. 앉아있는 내 다리 옆이나 뒤로 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내 팔과 몸통 사이를 얼굴로 툭 치고 들어온다. 나 여기 있어, 하는 것처럼. 쇼파 밑으로 걸어와서 내 다리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 때도 있다.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면 꼬미는 나를 쳐다보다가 곧바로 나한테 다가와 내 얼굴을 핥는다. 서로 다른 종인 개와 사람이 이렇게까지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놀랍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과 요구를 알 수 있다.
꼬미가 밥 먹고 트름을 하는 것도, 발바닥에서 나는 꼬린내도 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똥을 잘 싸면 아이고 우리 꼬미가 건강하구나 하고 기분이 좋다. 한 번 가본 곳에 다시 갈 때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가면 우리 개는 천재인가 싶다. 밥을 잘 먹을 때도, 마당 같은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 때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동물 병원에 가서 낑 소리도 안 내고 주사를 맞고, 다른 강아지가 으르렁 대도 조용히 숨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저러다 누가 때려도 공격 한 번 못할 텐데 하고. 이렇게 나열해놓으니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부모 자식 간이 아니더라도 사랑이라는 건 그 마음이 유사한가보다.
꼬미와 나는 공생한다. 외출을 하면 혼자 있는 꼬미를 생각하며 오래 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오려 한다. 미세먼지가 아주 심하거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산책을 나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품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핥는 이 포근하고 뜨끈한 강아지를 쓰다듬으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 ‘강아지’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면 그 발음조차도 동글동글한 게 귀엽다. 꼬미랑 함께 하면 ‘귀여워’, ‘사랑해’, ‘제일 예뻐’ 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한다. 좋은 말을 내뱉고 그것을 내 귀로도 들으면 내 삶도 좀 더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행복이 별건가. 이 포근하고 뜨끈한 존재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이게 바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