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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Jan 07. 2024

털뭉치 내 친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털이 참 많다. 어느 정도로 많으냐면 손등에도 털이 수북하다. 심지어는 손바닥에도 털이 자라서 주기적으로 털을 정리해주어야 한다. 머리카락에서 시작한 털은 귀와 등까지도 풍성하게 이어진다. 여기까지 묘사하면 이미 눈치 챈 독자들이 있을 거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는 바로 내 반려견이다. 이름은 꼬미! 



  처음부터 반려견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을 꿈꿨을 때에는 반려견과의 생활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반려견까지 챙기는 건 내 체력 밖의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반려견이 뒷전이 되기도 할텐데, 자주 놀아주지도 못하고 산책시켜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혼 후 앞으로 평생 혼자 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니 반려견과 다시 함께 살고 싶어졌다. 인생의 절반 넘게 반려견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반려견이 없는 집이 오히려 어색하게도 느껴졌다. 


  나 홀로 반려견을 책임지고 돌보는 게 가능할지 마음의 결심을 내리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고민을 들은 친구 한 명은 매일 산책 갈 필요 없고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덜 느끼는 고양이를 데려오는 건 어떻겠냐 했지만 고양이에게는 마음이 안 갔다. 나는 동물들 중에서도 강아지를 유독 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1인 가구이지만 반려견을 홀로 두는 시간은 적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키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지 찬찬히 살펴봐야 했다. 중학생 때부터 키웠던 나의 첫 강아지에게는 못해준 것들이 많아, 오래 미안했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달 동안은 책도 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면서 공부했다. 시간이 지나도 반려견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고 더욱 커져만 갔다. 하루에 한 번씩은 산책을 시키고 밥을 챙겨주고 양치를 시키고, 그보다 더 자주 똥오줌을 치워야 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미래에도 내가 꾸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 나라 저 나라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어쩌나,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던가. 오지 않을 미래의 일을 걱정하다보면 정작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못하게 된다. 반려견에 대한 내 마음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여행을 가고 싶다면, 반려견을 맡길 곳을 찾은 뒤 단기간 여행을 가면 된다(그렇지만 꼬미와 함께한 몇 년 동안 꼬미를 두고 여행가본 적은 없다). 박사 과정에 가고 싶다면 애견 유치원에 보내거나 다른 방법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다(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그렇게 꼬미는 우리 집에 왔다. 포천의 어느 집에서 태어난 꼬미를 데리러 갔을 때 푹신한 강아지 집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냄새를 맡으며 다가왔다. 꼬미의 아빠, 엄마를 키우던 보호자와 얘기를 하는 도중, 꼬미는 방석 안에서 나와서 다른 강아지에게 장난을 치며 놀기도 했다. 차로 한 시간여를 달려 우리 집에 도착하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켄넬 문을 열어주자 꼬미는 조심스럽게 거실바닥에 첫 발을 떼었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냐는 듯, 어리둥절해보이기도 했다. 거실을 이리저리 활발하게 다니면서 냄새를 맡고 탐색하지는 못하고, 켄넬 주변만을 어슬렁거렸다. 이때에도 조금씩 겁쟁이의 기질이 보였던 것 같다. 꼬미가 어리둥절했던 만큼, 나도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내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어색했다. 그때부터 그 집은 내 집이 아닌, 우리의 집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 잠시 어색한 시간을 겪은 뒤 꼬미는 어느새 몸무게 6.5kg 정도나 달하는 강아지로 성장했다. 물론 강아지 시기는 진즉 지나 개가 되었지만, 오래도록 내 강아지라고 부르고 싶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나 예능 프로를 보다가 잠을 자려고 텔레비전을 끄고 옆으로 돌아누우면 발밑이나 침대 어딘가에 자던 꼬미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모로 누운 내 등 뒤에서 꼬미는 자신의 등을 맞대고 털썩 눕는다. 이내 깊은 숨을 내쉬고 눈을 감는다. 마치 안도한다는 듯, 깊고 고요한 숨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무게와 뜨끈뜨근함에 나 또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하루도 잘 끝났구나. 내 강아지도 그렇구나. 내 옆에는 내 강아지가 언제나 함께하는구나. 그렇게 나도 안도하며 하루가 저문다. 

  내일도 함께 행복하자. 사랑하는 내 강아지 꼬미야. 



너무 쪼꼬매서 밥 그릇에 들어갈 것 같았던 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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