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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Jan 19. 2024

너에게서 배운 것


  내 무릎 위에 엎드려 졸고 있는 반려견을 바라본다.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반려견도 눈을 뜨고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이. 살며시 손을 올려 반려견의 머리부터 등까지 보드라운 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그냥 봤어, 예뻐서. 강아지는 안도한 듯 다시 턱을 내 다리에 대고 눈을 감는다. 




  반려견 꼬미를 처음 데리고 온 날을 나는 기억한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되었는데, 집 안에 나 외엔 인기척이 없고 고요하니 반려견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니가 본가에 데려온 반려견처럼 유기견을 입양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새끼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었다. 아직 작고 꼬물꼬물 움직여 한없이 웃음 짓게 하는 귀여운 아기 강아지를 곁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인간의 성격 발달이나 애착 형성에 생애 초기 몇 년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잘은 몰라도 강아지의 발달에도 그런 것들이 있을 거라 예상하기도 했다. 그 중요한 시기를 반려견의 평생 보호자이자 동반자가 될 나와 함께 겪길 바랐다. 

 

  펫샵의 많은 강아지들은 좁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태어난다는 걸 안다. 그 곳 개들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개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장 기계처럼 강제로 번식을 한다고 한다.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은 물건처럼 경매장을 통해 전국에 있는 펫샵으로 분양된다. 이런 펫샵 대신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법은 가정견사에서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입양해 오는 것이었다. 포천까지 한 시간 여를 운전하여 방문한 집. 그때는 아직 이름이 없었지만 곧 꼬미라는 이름을 갖게 될 작은 강아지는 까만 털을 가지고 있었으며 장난이 많아 보였다. 옆에 있는 다른 강아지와 장난을 치며 놀다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자신을 찾아보라는 듯 장식장 밑으로 숨기도 했다. 


  부모 견을 키우는 젊은 여자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예방접종 수첩을 건네받고 꼬미를 안고 밖으로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어미 개가 마구 짖기 시작했다. 개는 원래 짖으니까, 낯선 우리가 집에 들어올 때도 경계하며 짖었으니까, 그런 비슷한 의미로 짖는 줄 알았는데 내 품에 안긴 강아지도 구슬프게 함께 짖기 시작했다. 다시 들어보니 경계하며 짖던 짖음과는 분명 다른 소리였다. 그렇지만 강아지를 품에 안고 황홀한 귀여움에 사로잡혔던 나는 그 개들의 슬픔은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강아지가 느끼는 감정과 사람의 감정은 깊이가 다르다는 듯이. 그들의 감정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듯이. 



  내 발바닥 크기만 하던 꼬미는 어느덧 내 무릎 위에 일자로 누우면 넘치는 몸집의 성견이 된지 오래이다. 새까맣던 털은 조금씩 옅어져 이제는 흰색에 가까운 회색 털로 바뀌었다. 내가 책이나 티비 드라마를 보면서 슬퍼져서 훌쩍이면, 제 방석이나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꼬미는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물과 내 얼굴을 오래도록 핥아준다. 그렇게 하면 내가 느끼는 슬픔이 영영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책상 앞에 앉아 사무적인 목소리로 화상 회의를 할 때는 무심하게 있다가, 웃으며 사담을 나눌 때는 어느새 알아차리곤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그 재밌는 대화에 자신도 끼겠다는 듯. 그러다보면 카메라에 꼬미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꼬미도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한다. 차에 탔을 때나 낯선 장소에 가서 불안해지면 꼬미는 낑낑 거리는 소리를 낸다. 햇빛이 따사롭고 바람이 선선한 낮에 산책을 나가면 신나는 듯 꼬미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면서 꼬리도 좌우로 통통 튀기며 걷는다. 배가 고프면 밥그릇을 앞발로 긁고, 나를 보며 뒷발을 찬다. 장난감 공을 물고 와 내 앞에 올려다 놓았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때도 내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뒷발을 차며 소리를 낸다. 으르릉거리는 소리 같지만 경계할 때보다는 좀 더 높은 톤이다.  



  내가 낯선 곳에 데리고 가서 겁먹고 불편했던 날에도, 미세먼지가 심해서 산책에 못 나간 지루한 날에도 나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이 언제나 나를 반기고 옆에 있으려 하는 이 생명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꼬미에게서 배운 조건 없는 사랑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른다. 이 작고 무해한 존재에서 시작된 사랑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일 년 반 정도는 비건지향식을 실천해보기도 했고, 유기견 보호단체에 일시적인 후원도 해본다. 다른 종들과도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걸 꼬미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릎 위에서 다시 잠든 꼬미의 체온은 따뜻하다. 강아지의 체온은 사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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