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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Jan 26. 2024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이 헐렁이는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산책을 나간다. 이사할 집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겼던 조건들 중 하나는 집 근처에 산책할 만한 장소가 있는 지였다. 일을 하거나 쉬다가도 답답해지고 무료해지면 걸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물론 반려견 꼬미도 매일같이 산책을 해야 하기도 했다.


  지금 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큰 공원이 있다. 낡고 오래된 집이라 인테리어 공사를 전부 해야 했지만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가까이에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공원에는 인근에 사는 온갖 강아지들, 그러니까 아주 작은 말티즈나 포메라니안부터 리트리버나 허스키, 진돗개 같은 대형견들까지 다양한 강아지들이 산책을 나온다. 정작 겁 많은 꼬미는 강아지들이 모여 있는 그 공원을 종종 무서워해서 보통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을 하고, 이따금씩만 공원 산책을 한다. 강아지들을 산책길에서 잘 마주치지 않고, 차를 타고 낯선 곳에 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면 꼬미도 겁을 덜 내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 기회를 봐서 공원으로 같이 산책을 나간다. 


  아파트 단지보다 더 잘 가꾸어진 공원 나무들은 울창하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아름답다. 흙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공원에서는 높은 아파트 건물들에 가려지지 않는 하늘도 더 잘 볼 수 있다. 공원 둘레를 따라 걷다보면 길 건너로 내가 다니던 중학교를 마주치게 된다. 건물 외관이 좀 바뀌었고 널찍한 운동장 한 쪽엔 전에 없던 건물도 들어서 있었다. 



  오래오래 걷고 싶었던 어느 일요일 오후. 산책을 나선 김에 그 중학교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학교는 안전 문제 때문인지 철문이 굳게 닫혀져 있어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학교 바깥, 담벼락에 맞닿아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정문부터 후문까지 쭉 이어진 길이었다. 후문에 도착했을 때 문방구가 있던 곳, 그 자리에는 여전히 문방구가 있었지만 문에는 ‘점포정리 세일’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문방구 바로 옆에는 분식집이 있었었다. 방과 후 시간이 허락하는 날에는 친구들과 실내로 들어가 접시에 담긴 떡볶이를 호호 불며 먹다가 짭짤하고 따듯한 어묵 국물을 후루룩 마시던 곳. 시간이 별로 없으면 아주머니가 분식집 앞에 철판을 두었던 곳에서 컵 떡볶이를 주문해 먹었다. 어떤 날에는 피카추 모양의 돈까스를, 또 어떤 날엔 보라색, 주황색의 살얼음이 휙휙 돌아가는 슬러쉬 기계에서 나온 음료를 손에 쥔 채 집에 오기도 했다. 분식집은 장사를 하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치킨 집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헛헛해진 난, 근처에 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도 가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앞 상가 슈퍼에서는 아폴로라는 빨대에 든 캔디나 이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군것질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초등학교 앞 상가는 여전히 있었지만 슈퍼는 사라진 채 편의점만 있을 뿐이었다. 상가 벽면에 붙은 간판들도 모두 낯선 것이었다. 낯익은 치과 간판 하나만 눈에 띄었을 뿐, 이전에는 없던 스터디카페라든가 학원, 부동산의 간판들이 그 상가의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지나 내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 들어왔을 때도 익숙하면서 낯선 기분은 비슷했다. 내가 종종 놀곤 했던 우리 동 앞 놀이터는 구축 아파트들이 으레 겪는 주차난 때문인지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었고, 나머지 절반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어렸을 때 매일 같이 오가던 곳을 가면 반가운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너무 변해 버린 모습에 헛헛하고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집에 돌아와서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외관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 여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정보도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한 학년에 열 몇 반씩은 있었던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학년 당 적게는 네 반 밖에 되지 않았고 많은 학년도 채 열 반이 되지 않았다. 40-50명 쯤 되었던 한 반의 학생 수는 20-30명으로 줄어 있었다. 인구 감소가 큰 문제라는 뉴스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출산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내가 사회에 해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죄책감이 일기도 했다. 

 



  많은 부분이 변했다. 학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분식집은 사라졌고, 곧 문방구도 사라질 것이다. 아파트 세대수는 그대로이겠지만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수는 줄었다. 놀이터도 작아졌다. 그런 변화들 속에서 사라지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과거와 무엇이 그대로이고 어떤 게 변하지 않았나. 나만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 있고 주변 풍경들만 빠르게 흘러간 건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빠르게 변해가는 풍경에 휩쓸려 나도 많이 변해버린 건 아닌지? 


  흘러가는 시간들 속,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굳센 바람이 불어도 지면의 발바닥과 장딴지에 굳게 힘을 주고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들. 나 자신과 내 삶을 아끼는 마음과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선택들. 타인과 다른 생명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것들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다. 어떤 부분은 발전했겠지만, 또 어떤 부분들은 풍파에 찌들어 순진함을 잃고 변모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권선징악이 통하지만은 않고, 노력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많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세상사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도 지금껏 변하지 않는 건, 언제고 뜨겁고 싶은 마음이다.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열정. 타오르는 불꽃은 때론 거침없이 높게 치솟으며 타오르기도 하고 때론 약해지기도 하겠지만, 불씨가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마른 장작을 넣어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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