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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Jan 23. 2024

혼자 살 집을 구해요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몇 차례 이사를 다녔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 헤아려보니 우연히도 7년 마다 한 번씩, 총 세 번의 이사를 했다. 많은 돈을 벌진 않았지만 늘 성실히 일하며 절약하는 습관을 가진 부모님 덕에, 이사할 때면 좀 더 넓고 쾌적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이사하는 집을 선택하는 데 의견을 보태진 않았던 것 같지만 이사한 집은 매번 마음에 들었다. 처음 이사를 했을 땐 나만의 방이 생겼고, 그 다음 이사 땐 내 방이 좀 더 넓어지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거주할 집을 스스로 선택해야 했던 건 대학원에 입학할 무렵 부터였다. 그땐 많은 걸 따질 필요 없이 중요한 몇 개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됐다. 우선 학교나 직장과 가까우면서도 내 형편에 맞는 곳일 것. 그런 기준에 충족되는 선택지는 많지 않아, 하루 정도 근처 원룸들을 둘러보고 나면 걔 중 좀 더 깔끔한 집을 고를 수 있었다.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니었고, 학교를 졸업하거나 수련이 끝나면 다시 본가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에 집을 구하는 데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 1인 가구보다는 잠시 집을 떠나 머무는 느낌의 자취생에 가까웠던 거다. 



  하지만 이혼 후 이제는 정말 오래도록 혼자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이혼을 하고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까지는 신혼집이었던 아파트에 혼자 살았었다.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지인 몇몇은 그 집에 계속 살아도 내 마음이 괜찮은지를 걱정스레 물었다. 그중 어떤 이는 내가 형편이 안 되거나 갈 곳이 없어서 그곳에 산다고 생각한 듯, 원룸에라도 잠시 이사 가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어 언짢아지기도 했다. 난 그곳에 사는 게 좋았다. 전 남편과 같이 살았던 기간은 서너 달 정도 밖에 안 되어 추억이랄 것도 없었기에, 원래부터 혼자 살던 내 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2년의 전세 기간이 다 끝나갈 땐 그 집에 더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집은 혼자 살기엔 너무 넓었고, 높은 전세금이나 관리비를 혼자 감당하는 건 사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살 집은 일하는 상담소와 출퇴근하기 수월하도록 가까운 지역에서 물색했다. 막연히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생각했지만 지역 내 전원주택은 아주 비쌌다. 그래도 아파트가 제일 익숙했고 생활이 편리하다고 느꼈기에, 아파트 중 내가 주거할 만 한 집을 찾기 시작했다. 공원 옆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내 예산 범위 안에 들어왔다. 그 집은 오래된 갈색 창호와 빛바래고 촌스러운 벽지 따위가 거슬리긴 했지만, 손보면 괜찮을 듯 했다. 


  인테리어 업체 몇 군데를 찾아가서 견적을 받고, 그 업체들 중 사장님도 친절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곳을 선택했다. 처음 진행해 본 인테리어 공사는 결정해야 할 것도 많았다. 타일만 하더라도 현관 타일, 베란다 타일, 욕실 타일, 주방 타일 다 제각각 원하는 디자인을 찾아 선택해야 했다. 화장실 변기나 수전의 모양은 어떤 걸로 할 건지, 주방 가구는 어디까지 들어가게 할 건지 모두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결정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롭게 느껴져서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결과물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게 분명했다. 벽지와 장판은 물론, 심지어는 싱크대와 방문 손잡이까지 내 취향에 맞는 걸로 골라 선택했다. 그렇게 모든 선택이 끝난 뒤 공사는 시작되었다. 



  전체 인테리어 공사를 다 마무리하고 완성된 집을 보러갔을 때, 집이 확 달라진 모습에 무척이나 기뻤다. 자주 공사 현장에 가보지 못했는데 정말 처음과는 다른 집이 되어 있었다. 벽지와 몰딩은 환하고 깔끔한 화이트 톤으로 바뀌었고, 전구 색과 형광등 색을 반으로 섞은 듯한 주백 색 조명 덕분에 집안은 따뜻해보였다. 튼튼하고 깔끔한 하얀색 창호로 바뀌었고, 화장실 타일이나 수전 같은 것들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걸로 교체하니 이 집에서의 생활이 한껏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 기대와 만족감은 며칠이 지나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뒤 이사를 하면서 각종 가구와 짐을 들이니 깔끔하고 아담한 집이 한없이 비좁은 집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 몇 군데 작은 원룸에서도 살아봤지만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는데, 전에 살던 집보다 스무 평 정도나 줄여서 들어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큰 가구나 가전들은 버리거나 지인에게 주었고, 냉장고도 절반보다 작은 냉장고로 바꾸었는데도 살림 규모는 이 집에 비해 컸던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층고도 낮았다. 이전 집에서 쓰던 커튼을 그냥 달 생각이었는데 20센티미터 이상은 잘라내야 했다. 


  이사를 하고 한동안은 집에 있는 게 답답하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반려견 꼬미를 데리고 자꾸만 밖으로 나갔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하느라 신경 쓸 것도 많았고 고생을 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 게 아니라 더 안 좋은 것을 얻게 된 느낌이었다. 경제사정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괜스레 망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뭔가 더 조치가 필요했다. 새로 산지 이 년 밖에 안 되어 아까운 마음에 버리지 못한 자잘한 가구들을 중고거래 앱에 내놓기 시작했다. 작은 집에 있는 가구들은 10~20cm 차이로도 배치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걸 알고, 책상도 팔고 작은 걸로 새로 구매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적응하고 나니 이 집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반려견 꼬미와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짐을 현관 앞에 내려놓으며 나도 모르게 꼬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왔어.”, “우리 집 참 좋네.” 여행에서의 피로가 이제 끝났구나,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히 쉴 수 있겠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너무 좁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곳이 어느새 정든 나의 집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더라도 내 취향에 맞는 벽지와 장판, 내 생활 패턴에 맞게 배치된 가구들. 벽에 붙인 포스터. 선반의 화분들. 내 선택으로 살 집을 고르고, 그 안에 내 취향에 맞는 원하는 것들을 채워 넣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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