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설 Jan 30. 2024

그곳에서 살 수 있다면


  텔레비전 속에선 시골집 영상이 나온다. 마당에는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마당 한쪽엔 작은 텃밭이 있다. 저 정도면 많이 넓지도 않아 상추나 깻잎 같은 채소들을 조금씩 키워 먹기 제격일 것 같다. 잔디 관리하는 건 힘들다던데 그래도 잔디에서 반려견 꼬미랑 같이 공놀이를 하며 놀 수 있다면 그 정도 귀찮음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카메라 앵글이 실내를 비춘다. 거실 큰 창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지듯 들어온다. 혼자 살 거니 화장실은 두 개까지 필요 없는데, 그래도 하나는 손님용으로 써도 되니까 뭐. 주말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놀러오라고 해야겠다. 


  대부분 혼자 식사를 하는 난,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튜브나 예능 프로를 틀어놓고 밥을 먹는다. 처음엔 혼자 식사하는 게 심심하고 허전하니까 그랬을 텐데, 이제는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리모컨부터 손에 든다. 요즘에는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강화도 부동산 채널 몇 개와 시골살이를 하는 유튜버들의 채널을 종종 본다. 당장 이사를 할 계획도, 다른 집으로 이사할 여유 자금도 없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그 집에 사는 상상을 펼치는 걸 좋아한다.   



  20대 시절엔 종종 인터넷에 들어가 자취방 매물들을 찾아보곤 했다.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입학하고 싶은 학교 주변의 원룸들을 찾아봤다. 이 학교에 가면 이런 자취방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병원 수련 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찾아보는 지역이 전국구로 더 넓어졌다. 그 시절 나에겐 내가 공부하고 일하는 곳에서 가깝고, 또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더 이상 옮겨 살지 않아도 되고, 지금 사는 집이 그리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도시 아파트에 사는 건 어쩐지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제는 원룸이 아닌 자연에서 살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고 그곳에 사는 내 삶을 상상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오두막을 직접 지어 살거나 헬렌과 스콧 니어링처럼 대부분을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먹을 것의 일부는 스스로 재배를 하고 수확해서 음식을 해 먹는 삶을 살길 바란다. 집을 수리할 일이 있으면 단순히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기사님에게 해결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인지 스스로 알고 어느 정도까지는 수리할 수 있는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머릿속으로 계획도 세워본다. 지금 하는 심리상담 일은 소진되기 쉽기에 일주일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스케줄을 잘 짠다면 일주일 중 사나흘 정도만 출근해도 괜찮을 듯하다. 그렇다면 먼 시골은 아닐지라도 강화도 정도에서는 출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도시에서 파생된 일들, 이를 테면 보고서 작성이나 상담 일지 작성과 같은 서류 작업들을 하고, 또 남는 시간에는 많이 읽고 많이 쓰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쓰다가 막힐 때면 마당 잡초도 뽑고 식물도 가꾸고, 오랫동안 마당에 앉아 하늘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문장을 짓고 싶다. 한적한 동네 길을 따라 꼬미와 아주 천천히 산책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차들, 높은 건물들로 북적북적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 속에서 나는 더 행복할 것을 안다. 하지만 바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까닭은 도시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기에 두려운 마음부터 들기 때문이다. 삼일 정도라도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출퇴근하는 게 너무 피곤하지는 않을지, 아파트를 사서 재산을 축적해나가는 시대의 풍조에서 내가 역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가난의 지름길로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택에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홀로 부지런히 처리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들은 직접 해봐야만 직성에 풀리는 내 성미 때문에 언젠가, 아주 오래 지나지 않아 강화도 마당 딸린 집으로 이사를 할 것임을 안다. 고요한 그 생활이 지루해진다면 도시로 돌아올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 후회가 남지 않으니까. 태양이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시간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 집에서,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하늘빛을 쉽게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다른 이들이 내는 소리보다는 새소리나 바람소리에 더 가까울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전 19화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