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설 Feb 02. 2024

붕어빵과 식물


  계절의 변화는 냄새에도 찾아온다. 차가운 공기에서 약간은 비릿하고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두터운 겉옷을 찾아 입게 된다. 그런 계절, 골목을 걷다보면 붕어빵 노점상과도 마주친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난, 노점상 앞을 지날 때에도 흘끗 눈길을 주게 되는데 그럴 때면 문득 나도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붕어 모양으로 조각된 틀 안에 주전자에 든 뽀얀 반죽을 흘려 넣은 뒤, 그 위에 팥이나 슈크림을 넣고 틀을 닫고 구우면 완성되는 그것. 때론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맛이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연습 만해도 결과물이 금방 만들어지는 그것의 매력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내담자와 심리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붕어빵 노점상에 들러 붕어빵을 사왔다. 아직은 뜨끈한 기운이 남아있는 붕어빵을 손에 들고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며 그날의 심리상담 회기를 머릿속으로 복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 노력했는데 무엇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까, 놓친 게 있었나, 어떤 부분을 더 개입했어야 했나와 같은 생각이 이어졌다.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고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금전수 화분에 새 잎이 돋아나 있는 걸 발견했다. 과습이 되었는지 줄기가 하나둘씩 옆으로 꺾였고, 계속 보살펴주었는데도 결국엔 모든 줄기가 다 죽어버렸던 화분이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고 돌볼 땐 살아나지 않아 속상했는데, 잊어버리고 물도 주지 않는 사이 어느새 새로운 잎이 자라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사라질 만큼 기쁨은 컸다.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는 내담자도 결국은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과정 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금전수가 결국 다시 자라난 것처럼. 


  내가 하는 심리상담 일은 노력을 기울여도 바로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마음이 힘들 땐 뭐 때문에 힘든지 명확한 이유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원인을 알아차리고 나아질 수 있는 방법도 손에 쥐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괜찮아지거나 변하지도 않는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치료해나간다는 건, 상처 진 곳에 빨간 약을 바를 때처럼 느껴지는 통증을 견뎌야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그 상처가 나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에 빨리 나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는 한 내담자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심리상담은 상담자가 차려주는 음식점에 와서 식사를 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그것보다는 메뉴가 정해지지 않은 쿠킹 클래스에 가깝다고. 내담자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일지 같이 찾아보고, 또 어떤 재료들이 필요한지 리스트를 작성해보고 그것을 함께 구매하러 가는 과정이라고. 어떤 모양과 색깔일 때 재료가 신선한 건지를 알아보기도 해야 하고, 때론 재료의 씨앗을 사서 직접 심고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까지 포함이 된다고. 상담자는 기본 레시피를 가지고 있지만 내담자의 기호에 따라 설탕을 더 넣을지, 소금을 덜 넣을지, 어떤 재료를 더 추가하고 뺄지는 함께 정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기나긴 과정이라고. 


  이렇게 하는 까닭은 상담자에게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일지라도, 내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담이 모두 종결되어 의지할 수 있는 상담자가 없더라도 내담자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닌 함께 연습하고 훈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올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나는 심리상담가로 살아가는 게 무력하게 느껴졌다. 어떤 날엔 좌절했고 아주 가끔은 그 일에 환멸이 일기도 했다. 소진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원 시절이나 졸업 후 병원에서 수련을 하면서 매일 아침부터 자정 무렵까지 공부와 일을 하던 시절에도 몸이 피곤하고 지친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 일에 소진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 타 기관에 강의를 갔을 땐 그곳에서 일하는 담당자 선생님이 나더러 소진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난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들, 그러니까 일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해주고 돌아왔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봤을 땐 과연 내가 소진을 경험한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임상심리전문가로 할 수 있는 심리평가나 교육, 연구 등은 뒤로 하고 심리상담의 매력에 빠져 5년 전 심리상담소를 열었고 그 후로 심리상담에만 매진했는데, 그러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소진이 되었던 것 같다. 공감을 위해 내담자의 경험 속에 들어가 함께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은 크게 날 소진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냉소에 가득 차 있는 사람, 이를테면 상담실 테이블 앞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며, 당신이 상담자라면 무엇이라도 해서 자신을 변화시켜 보라는 것처럼 단답형 답만을 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면 난 금방 지쳐버리고 만다. 그들이 내뿜는 냉소는 사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믿었던 사람과 세상에 대한 배신과 상처가 가득 쌓여서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러한 상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 나는 지쳐버리고 만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팀워크를 이루며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하는데, 그 팀워크라는 건 상담자인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만약 진로를 선택하는 시절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은 길을 선택했을 거라는 걸. 이 모호함을 견뎌야하는 일을 하다보면 때로는 내가 노력한 것보다도 더 큰 결실이 맺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뿜는 생명력과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 거기에 나의 노력과 진심어린 마음이 합쳐지면 예상보다 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 년 가까이 과거를 얘기하며 눈물을 쏟아내던 내담자는 어느덧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던 이전과 달리, 과거의 자신에 대해서도 조감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에만 몰두되었던 심리적 에너지를 현재로 가져오니, 현재하는 일이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용사 자격을 딴 뒤 미용실 인턴으로 취직했다. 독한 염색약이나 파마 약을 다뤄야 하는 까닭에 손은 거칠게 변하고 갈라져 피가 나기도 하고, 염색약으로 얼룩져 있지만, 또 이전 직장보다 월급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런 손을 부끄러운 듯 보여주며 웃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또 현재를 살아서 행복하다고. 


  나는 내 배가 부른 뒤에야 남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리 이타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이 일을 하면서 내담자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이타적이고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기쁘다. 



  올 봄에는 더 많은 식물들을 심어야겠다. 붕어빵처럼 뚝딱 만들어지진 않지만, 그것들이 자라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내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흔적들을 더 분명히 관찰할 수 있도록. 죽어버린 줄 알았던 화분에도 새싹이 돋아날 때가 있는 것처럼, 나와 함께 만들어간 작은 물결이 결국은 큰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이전 20화 그곳에서 살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