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야.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넌 눈치는 있는데, 남을 크게 신경 쓰진 않는 것 같아."
뜨끔했다. 이 말이 나에게 딱인 거 같아서 흠칫 놀랐다. 맞다. 난 눈치 백 단이다. 하지만 눈치는 눈치고 크게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지키고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방식이다. 본능적으로 눈치는 굉장히 빠르다. 아무래도 어릴 때 이런저런 눈칫밥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성숙하기도 빨리 성숙했고, 눈치도 빨라 눈치껏 행동도 잘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눈치 없이 자존심을 내세운 적도 많다. 환경이 환경이었다 보니 그 어린 나이에도 동정의 시선과 말들이 너무 싫었다.
'난 괜찮은데 지들이 뭐라고 나를 불쌍히 여기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지?'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자존심이 강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괜찮았기 때문에 저런 시선들이 싫었던 걸까.
물론 이상적인 가정도 아니었고, 평범하지도 않았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 시절엔 듣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나를 향한 동정의 말과 눈빛이 몸서리치게 싫었고,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 남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내가 눈치를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상황인지 판단이 빨라지고 눈치를 보고 있다. 어릴 때와 20~30대 초반엔 눈치가 보이면 나름대로 분위기 파악을 하고 눈치껏 행동을 잘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고는 눈치는 보지만 그냥 신경을 쓰지 않고, 내가 생각한 대로,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나 자신이 남에게 피해받는 게 싫기 때문에, 나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눈치를 보는 습관은 계속 배어 있게 되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눈치는 눈치고 나는 나다라는 생각을 갖고 생활하게 된다.
이런 것만 봐도 난 이중적인 면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눈치는 보지만 눈치 보지 않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나만 그런 건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것 같다.
아이들 키우는데도 이런 나의 성향은 반영이 된다. 아이가 속상한 일이나 뭔가 부러운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그 얘기를 들으면 항상 하는 말이 "신경 쓰지 마. 무시해."이다. 굳이 남의 일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남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남이 뭐라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또 단원평가나 시험을 보고 올 때 '하나 틀렸어.'라고 얘기하면서 '근데 ㅇㅇ는 5개밖에 안 맞았대.'라고 얘기를 하면 난 '다른 사람이 중요해? 너만 잘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 다 맞았어.'라고 말을 할 때면, '다 맞은 애들 많아.?'라고 묻는다... 다른 애들 신경 쓰지 말라 해놓고 그건 왜 궁금한 건지 참... 여기서만 봐도 내 성향이 나오는 것이다. 눈치는 보고 신경은 쓰지만, 신경을 안 쓰는 척을 하는 거라 해야 하나...
난 나 나름대로의 멘탈관리법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신경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마 전혀 신경 안 쓴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어느 정도는 신경을 쓰지만, 나처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고 노력하고 멘털관리를 하는 게 아닐까. 나도 최대한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고 넘기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이런 이중 잣대가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것 같아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 종종 티가 나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도 그건 하나 확실하다. 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그런 마음들이 합쳐져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중 자아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