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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y 15. 2023

엄마의 삶이 이처럼 쨍하게 빛나기를..

편안함에 이르기엔 아직 너무 애송이.

주말.

한 주 늦은 어버이날 기념 순회공연을 마쳤다. 토요일에는 시댁, 일요일에는 친정.


일요일 아침, 우리 식구 가겠다고 전화를 드리니, 엄마 아빠가 지금 잠시 나와계시단다. 어디가시냐 물으니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고, 조금 민망하신 듯 두 분 다 웃고 계셨다.


"아빠가 엄마 신발하나 사준다고 해서 나왔어~~ "


"사준다고 한 게 아니고, 아빠한테 엄마가 나 선물하나 사주고 싶지 않냐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이렇게 나왔다. 니네 엄마 왜 이러냐~~"


이러시며 두 분이 계속 웃으셨다. 엄마 생신이 다다음주고, 작년 엄마 생신땐 아빠 비상금을 털어 엄마 목걸이를 해달라시더니, 올해는 신발을 요구하셨나 보다.


우리 엄마.

그런 분이 아니시다. 평생 지금껏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본인을 제대로 챙기며 살아보지 못 한 분이다. 자식 먼저, 남편 먼저, 시어머니 먼저, 그러다 보면 엄마 본인을 챙길 여력은 없었으리라.


자식 돈 쓰는 거, 남편 돈 쓰는 거 아까워 쩔쩔매시던 엄마인데, 어버이날 좀 값나가는 화분을 보내드리겠다니 거절하시지 않고 흔쾌히 기쁘게 받으시고, 아빠에게 당당히 생일 선물도 요구하는 엄마가 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눈부시게 반갑다.


세 꼬맹이 육아로 지치던 나의 30대에 꿈꾸던 40대 역시 평화롭지 않은 나날들이다. 몸은 거의 키웠으나 아직 단단한 정신 상태를 만들어 줘야 하는 큰 과제가 버티고 있는 육아에, 집 하나 어렵사리 장만했으나 갚아야 하는 대출에, 곧 닥칠 아이들의 독립 후 내 삶에 대한 고민과 대비에, 20년 가까이 살면 좀 맞춰질 줄 알았으나 여전히 안 맞는 남편에.. 휴..


40대도 아니구나, 40대는 30대보다 더 치열히 살아야 하는 나이구나, 엄마 아빠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인생이 좀 편안해지는 게 맞는 거구나.


월요일 아침. 40대가 주인 온라인 독서모임 단톡방.

자식, 돈, 내 인생에 대한 지혜들이 모인다.



부모님들 만큼 살아내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고, 내 손톱밑에 가시가 제일 아프지만, 그런 가시 하나쯤 안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는 거 보면 그냥 인생과 고통은 함께 가는 거 같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엄마에게 선물한 빨간 안스리움처럼, 엄마의 얼마 안 남은 60대와, 70 이후의 삶이 모두 쨍하고 빛나기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그리고 나도 그 삶을 향해 또 묵묵히 나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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