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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Oct 09. 2024

사춘기, 이게 끝이 아니라면?

돌아버릴 것 같던 18개월이 지나고, 미친 18살을 마주하다.

쌍둥이가 18개월쯤이 되었을 때, 그 어린것들을 둘러업고 큰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들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6살짜리 막둥이 위로 고등학생, 중학생 딸 둘을 키우는 엄마가 한 분 계셨습니다.


“쌍둥이 아가 키우느라 힘들죠? 이제 요만큼이라도 커서 좀 나아요?”

“이제 18개월 들어섰어요, 뭐든 내가 하겠다고 떼를 부리는 시기라 또 힘이 드네요. '내가내가 병' 아시지요? 뭐든지 다 지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휴..”

“18개월.... 하하하. 우리 집에는 미친 18살이 있어서, 내가 매일매일 늙는데...”      

끝날 줄 모르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큰딸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하셨던 그분의 이야기가 그때는 잘 모르겠더니 이제와 생각하니 어떤 뜻이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쌍둥이가 누워만 있을 때는, 일어나 아장아장 걸어만 주어도 나을 텐데, 자기들 손으로 밥만 떠먹을 만큼만 커주어도 좋을 텐데, 어린이집만 가면, 유치원만 가면, 학교만 가면,.. 그렇게 한고비 한고비를 넘을 때마다 다음엔 더 수월해지겠지, 다음엔 더 편해지겠지 했었습니다.


그렇게 육아에는, 아니 우리의 삶에는 늘 넘어야 할 고비가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거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넘어야 할 태산이 있다길래, 저의 태산은 어린 세 아이의 육아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보다 더 큰 태산이 또 나타납니다. 삶은 그 어느 레이스보다도 길고 긴 여정이라 특정 시기에 너무 연료를 다 태워버리고 나면 번 아웃이 오고 탈이 나고 맙니다. 제가 그때는 그걸 모르고, 그저 최선만 다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쌍둥이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아이들 친구 엄마가 그러더군요. 아이들과 닮기도 했지만 저를 보면 딱 그 쌍둥이 엄마구나 알겠다면서, 밝은 아이들만큼이나 엄마한테도 밝은 빛이 난다고요. 그냥 스쳐 지나듯 했을지 모를 그 말을 저는 무슨 훈장처럼 가슴속에 꼭꼭 눌러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절대 휘저으면 안 되는 큰 우울이 자리 잡고 있었을 텐데, 그게 드러나는 게 무서워 제 스스로에게도 꽁꽁 감추고 드러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빛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이 시간만 지나가면 된다, 그렇게 큰 숨 한번 쉬고 꾹 참아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다 유아여서 세 아이의 먹고 자고 싸는 일이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하는 그 시기를 지났더니, 세 아이 모두 학교에 입학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또 생기고, 그 시기를 다 지났더니 큰 아이의 사춘기가 오고, 그 시기를 또 겨우 지나니 쌍둥이의 사춘기가 차례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세 아이의 친구문제, 진학문제, 학업문제, 연애문제 등 수많은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큰 아이의 사춘기를 지나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는 그 순간부터 내가 죽어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니 어쩌면 사후세계가 있다면 죽어서도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게 엄마라는 존재구나. 뒤에서 이야기할 책인 <꼰끌라베>의 한 구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책임감이란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 끌어안고 싸우는 바윗덩어리와 같다."


지금도 물론 저는 또 생각합니다. 모두가 스무 살까지만 키워놓으면 내 할 일이 끝나는 거겠지.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예전처럼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듯이 다 태우며 갖은 애를 쓰지는 않습니다. 나를 위한 에너지도 조금 남기고 애달파한다고 달라지지 않는 일에는 에너지를 아끼기도 합니다.


아이의 사춘기는 인생의 큰 이벤트인 것은 맞을지도 모릅니다. 지혜롭게 이겨나가야 할 시기임에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이 시기만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평화로워지리라는 헛된 기대보다는 인생에서 지나가는 한 고비쯤으로 여기고 에너지를 잘 배분하셨으면 합니다. 더 큰 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화에 이야기할 저의 '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삶은 고해라고 했습니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고 하니, 내 삶만 힘든 게 아니고, 내 삶만 버거운 게 아니니, 고비고비 지혜롭게 너무 진 빼지 말고 잘 넘어가 보는 지혜를 발휘해 보죠. 그렇게 쌓은 지혜로 내 삶의 도구 하나하나 비축하는 느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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