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을 뺀, 무대뽀 믿음이 있는 마음 속에
가진 자의 여유.
보통 여유로운 마음은 무언가를 가졌을 때 나오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마케팅 메시지 속에 파묻힌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탓도 있을까. 불안이 일상화되어 불안한 마음 상태가 이제는 당연한 것인 마냥 되어버린 것 같다.
과거-현재-미래가 이어진 시간 속에서 발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지금 가진 것이 영원하지 않은 것임을 인지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기에 불안함은 숨어있다가도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곤 한다.
그런 불안함의 저변에는 항상 친구처럼 비교하는 마음도 함께 쌍을 이루곤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무언가를 항상 보여주는 쇼윈도와 같은 스마트폰과 SNS는 꼭 지금 당장 비교하고 눈에 불이 화르르 타오르는 질투심을 조장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이 되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의 마음에 지속적으로 작거나 큰 영향을 미치고 인상을 남긴다.
불안한 이유, 그리고 우리의 여유로움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이유.
그게 다 우리 사람이 너무 똑똑해서 일어나는 일인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너무 지능이 높아서 앞날을 걱정하게 되고, 지금 가진 것이 언제 사라지진 않을까 계산하게 되고, 다른 사람 다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응답하라 1988에 7수생 정봉이라는 캐릭터를 참 좋아하게 되었다.
몸이 아프거나 이러저러한 환경적 한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7년째 수능을 보고 있는 정봉이의 일상은 어찌 보면 참 여유롭다.
하루 종일 공부에 몰두하는 대신, 전화번호부를 정독하거나, 우표를 수집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종이 학 천 마리를 접거나...
원래는 똑똑하지만 그렇게 평소에 정신을 빼고(?) 즐겁게 일상을 누리는 정봉이의 모습을 보고 참 힐링 되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도, 나의 주변의 모습도 정봉이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 그 자체였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고 있는 여유는 은행 통장의 숫자가 아닌, 예쁘고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멋지고 잘난 파트너나 화려하고 비싼 아파트와 건물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취미에 몰두하고,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며 주변 사람들과 두런두런 시간을 보내는 조금은 진지한 정신을 빼고(?) 다 잘 될 것이라는 무대뽀의 믿음(?)이 함께하는 일상의 여유는 아닐까 생각했다.
고흐가 불안함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일상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을 가지고 우리도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가꾸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7수라는 불안함 넘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랑과 대학 합격이라는 성공을 거머쥔 푸근하고 여유로운 정봉이처럼.
다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