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아이가 휘적휘적 움직였다.
다리인지 팔인지 꼬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바로 '감격의 눈물'이라는 것을 배웠다.
'감격'도 '눈물'도 나에게는 낯선 단어이다.
감정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고 주로 사용하는 감정이 슬픔이긴 하지만, 잘 울지는 않고 못한다.
감정을 삼키고 소화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삼키고 소화하는 방법밖에 몰랐고,
지금은 적절히 내어놓고 천천히 소화해 본다.
감정을 막 표출한 후에 오는 자괴와 반성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슬픔이 익숙하다.
어찌 보면 항상 슬플 준비를 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기쁨이 낯설다.
기쁠 상황이 나에게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대학에 붙었을 때도,
5수 끝에 교사가 되었을 때도,
그리고 여러 번의 시술과 유산을 지나 아이의 임신을 확인했을 때도.
나는 안도했다.
지난 아이는 심장이 약하게 뛰다가 멈추었다.
그래서 이번 아이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을 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게 안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깨달았다.
3cm의 아이가 팔다리도 아직 되지 못한 무언가를 휘적이며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할 때.
머리와 허리라는 것이 구분될 정도로 컸다는 게 실감될 때.
큰 소리를 내며 엄청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반짝임이 들리고 보였다.
안도의 한숨도 뱉었지만 이내 울 것 같았다.
내가 감격의 눈물이라는 걸 흘릴 줄 몰랐는데.
경이로움과 감격이라는 말 외에 안도 만으로는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런 느낌의 감정을 느끼는 건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유난스럽지 않은 임산부가, 그리고 엄마가 되리라 했는데, 이건 유난히 아니라 특별함임을 알았다.
우리 아이가 특별하다가 아니라 내 삶에서 손꼽을 만큼 특별한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이전 아이를 보내주면서도, 그 짧은 과정이었지만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과 사랑을 배웠다.
어떤 사람이든 그 신비로운 과정과 특별함을 거쳐서 태어났을 테니까.
우리 아이도.
특별하게 태어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걱정과 불안을 아예 밀어내진 못하겠지만, 처음 가져보는 묘한 확신을 함께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사히 만나리라 믿으며,
그리고 무사히 세상과 만나 이 오랜 기간 살아온 우리 모두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