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상담 선생님께서 나에게 '아이에 대한 로망'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로 하고 임신을 해서 13주가 되는 지금까지, 아이가 잘 살아있을까만 걱정했지 아이를 낳은 후 아이와 함께할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지,
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대처방법을 남편과 고민해 본 적은 있지만, 이게 로망은 아니고...
함께 하하 호호하는 모습도 잘 상상이 안 된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웨딩 플래너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빨리 끝나는 결혼식을 원한다고 했다. 드레스도 부케도 웨딩 촬영에도 로망이 없었다.
꽤나 현실적인 나로서는 로망이란 게 몽글몽글하고 두근두근한 단어라기보다 뜬구름 같고 비현실적인 단어로 느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로망하나 없는 삶이라니...
너무 각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로망을 떠올리려면 무슨 뜻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가 쓰는 의미로는 사전에 로망이 나오지 않는다.
사전에 '로망'을 찾으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전기적 공상적인 문학의 한 갈래. 로맨스의 어원.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로망은 저 뜻은 아니다.
우리의 로망은 꿈과, 상상과, 바람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
이런 예문들을 통해 생각해 보면.
미래에 대한 바람이나, 꿈꾸고 상상하는 긍정적 모습에 가까운 단어가 로망 같다.
조금 더 나아가보면, 단순히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이나 상상만으로 로망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우리가 말하는 로망의 핵심은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지는 것 같다.
늙어서 무병장수한다거나 자연사하는 것이 내 희망이고 바람이지만 로망은 아니듯이.
아, 찾았다.
내 노년기의 로망은 쾌적한 방 안에서 편안하게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올려두고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많은 삶의 무게를 지나왔고 그 몸에 아직까지 얹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평안하고 안온한 풍경 속에 있는 것.
아이에 대한 로망도 있는 것 같다.
밝은 햇살 속 푸른 잔디밭에서 나와 잡은 손에 잔뜩 체중을 싣고 한 발짝 한 발짝 걸음마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현실에 그런 넓은 잔디밭도 없을뿐더러, 그 주변에는 온갖 가족과 연인과 사람들 투성이이지 않을까. 맑은 햇살은 다르게 말하면 무지 뜨겁고 더운 날씨 아닐까 하는 현실감이 비집고 올라오지만.
좀 비현실적이고 뜬구름 같으면 어떤가?
어차피 내 마음에만 담는 거. 이상적인 모습으로 담아두면 되지.
현실로 이루지 못해도 어떤가?
로망이라도 마음에 담고 현실을 버텨보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