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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내가 천직을 찾아가는 과정

1.

나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때 피상적인 접근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올해 초 내가 가진 고민을 근원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내린 고민에 대한 답은 ‘정신적 공간의 차원 높이기’였다. 결국은 차원만 높이면 지금 겪는 고민들이 대부분은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3월부터 정신적 공간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고, 투쟁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느낌만큼 투쟁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음에도 끝까지 쟁취해 보자고 다짐했다. 내 눈앞에 벽인지 계단인지 모를 이 갑갑한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뻔하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가장 원하지 않은 최악의 플랜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까 뭐가 됐든 투쟁하고, 쟁취하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2.

마음을 굳게 먹는 것과 굳은살이 자라나는 것에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성립되려면 굳게 먹은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고, 계속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실행해서 실패하든 성공하든 현실의 결과가 날아와 내 마음에 꽂혀야 그제야 굳은살이 자라날 토양이 다져진다. 여기서 자라나는 굳은살을 방패 삼아 세상과 현실의 냉정함에도 상처를 덜 받고, 내 갈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게 된다.


3.

그렇게 3월부터 시작한 투쟁은 시도하는 방식과 방법들만 바뀔 뿐 몸부림과 같았던 투쟁의 형태는 4월, 5월에도 여전히 이어나갔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더 냉혹했다. 투쟁 과정이 힘들었다는 것을 나는 나의 루틴을 체크하는 캘린더만 봐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는 꾸준히 이어오던 새벽 독서를 거의 하지 못했고, 평소보다 군것질 양과 잠도 많이 늘었다. 나에게 있어 잠이 늘었다는 것(평소와 비슷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전제)은 전형적인 ‘회피’현상이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으니 나의 뇌에서 계속 수면을 유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지로 이겨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4.

그럼에도 투쟁과 별개로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이어나갔다. 군것질이 늘었음에도 늘 유지하던 건강한 식단을 규칙적인 시간에 맞춰 먹었고, 짜증 나는 마음을 가득 앉고 있음에도 매일 운동을 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간 쌓였던 불만을 마음속에 가두지 않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기를 쓰며 감정을 토해내는 동시에 필력을 쌓았으며, 일하기 싫어 즉흥적으로 밖을 돌아다니던 날에도 본능적으로 영감을 찾고, 그것을 기록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시켜 일에 적용했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늦게 일어난 날에는 낭비한 시간만큼 저녁을 희생하든 주말을 희생하든 어떻게 해서든 보충을 하여 ‘근근이’ 내 할 일을 이어나갔다. 모순된 일상의 연속이었다. 내가 봐도 이 투쟁을 향한 나의 몸부림은 정말 멋이 없었다.


5.

그런데 약 3달간 이어온 나의 투쟁이 이번 주에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이번 주에 나는 '일이 너무 재밌다'는 말과 감각을 가장 많이 반복하고 느꼈다. 물론 그전에도 일이 재밌다고 느꼈던 적은 아주 많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난 10년을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의 태도로 일해왔기에 일하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억지로 커리어를 이어간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재미는 조금 차원이 달랐다. 차원이 다른 이 느낌을 내가 가진 언어의 세계로는 도저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느꼈던 감각 중 하나만 짚어보자면, 문득 일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직업적, 직무적, 산업적, 사업 구조적인 형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피상적인 접근이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의 속성'이다. 새롭게 도전한 '일의 속성'에서 어쩌면 나와 꽤 오래 함께하겠다는 지속 가능성을 느낀 것이다.

*직업적, 직무적, 산업적, 사업 구조적인 형태가 피상적인 접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6.

기존에 내가 해왔던 일 또한 나의 적성에 맞았던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같은 성격의 사람이 10년 넘게 해올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존에 해왔던 일의 경우 공간적, 시간적, 물리적 환경 즉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형태가 바뀌니 어떤 식으로 발현시켜야 할지 몰라 많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시도한 방식 중 하나가 '피보팅'이 아니라 '스핀오프'였다. 즉, 기존에 내가 해왔던 것, 적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유지하되 새로운 적성을 확장시키고, 이 확장된 것을 키워 기존 정체성과 다시 복합을 이루면 정말 차별화된 나만의 역량이 되겠다는 가설을 세웠다.


7.

재밌다고 느낀 이 일은 3월 투쟁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새로운 플랜 A-2의 일환 중 하나였다. 궁극적으로 본래 가지고 있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조금 우회하여 세웠던 플랜이다. 내가 가진 역량을 기반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아주 어렵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인 건 맞다.


더 재밌는 건 이 A-2에 대한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이를 위한 플랜 A-3을 빠르게 수립하여 실행했는데 이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역량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꼈다. A-3을 병행한 덕분에 A-2에 대한 역량도 함께 향상되었고, 비록 고통스러운 투쟁 과정을 겪었지만 반대로 실력 향상에 대한 감각이 나도 모르게 누적되고 있었다. 이번 주는 그 누적된 것들이 드디어 흘러넘쳐 그간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이 서서히 씻겨나가는 듯했다. 그것들이 씻겨나간 뒤에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눈물나게 행복하다는 감정이 채워지고 있었다.


8.

물론 감정은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에 이 감정에 의해 들뜨기보단 더 세밀하게 나를 관찰하고 기록해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 기록에 의하면 나는 작년 이맘때쯤에도 방황하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과정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낀 기간이 대략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점점 회복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일기장에 기록해두었기에 원하지 않는 감정이 다가와도 당황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결국 나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망치는 환경에 나를 오래 방치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9.

어쨌든, 다시 한번 더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생겼다. 아예 새로운 방향이라고 말한다면 이건 그동안 내가 꾸준히 해온 것들이 다 무의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시간 동안 그게 삽질이건 뭐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지점까지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테니까. 내 안에 몰랐던 새로운 재능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그간의 삽질을 반복하며, 역량을 키워왔고 이번 플랜을 통해서 보이지 않아서 가늠할 수도 없었던 그 역량이 이제서야 모습을 들어낸 것이다. 재밌다는 감각을 넘어 희미하지만 확신의 감각도 느꼈다. 나는 이 일을 시작으로 결국 내가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될 것 같다는, 그러니까 우회한다고 여겼던 플랜이 알고 보니 지름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했다.


10.

3월 투쟁의 시작이었던 나의 플랜 A-2는 계속해서 새로운 플랜과 시도를 파생시키고 있다. 그만큼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재밌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이게 내가 천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쟁취하거나 때로는 상실해 봐야 스스로 가고자 할 경로가 겨우 반경 500m까지는 확보된다. 


그 500m까지 나아가면 나는 또 새로운 투쟁을 시작겠지. 매우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이미 지도에 정해져있는 길을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금씩 천천히 스스로 반경을 확보해 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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