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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불완전함의 미학, 와비사비(wabi-sabi)의 태도

오늘도 역시 이번 한 주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평일에 부지런히 썼던 일기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일요일마다 쓰는 생각 조각은 내가 한 주 동안 가장 집중했던 생각이나 또는 가장 강렬했던 감각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선명하게 색칠하는 작업과 같다. 어쩌면 평일 저녁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는 ‘일기’라는 ‘날 것의 재료’들이 일요일 오전 ‘생각 조각’이라는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통해 새로운 ‘요리’로 탄생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번 주에는 짧지만 아주 강렬했던 감각에 대해 다시 한번 끄집어 내보기로 했다. 지난달 3월 투쟁 덕분에 나의 흥미를 살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게 초반에는 순항하는 듯하다가 이번 주에 미묘하게 방향을 바꾸는 상황이 발생했다. 스스로 ‘미묘하다’고 표현했지만 무언가를 해나감에 있어 사소하게라도 각도를 바꾸는 일은 절대 미묘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감각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미묘한 방향 전환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기획했던 대부분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지점에서 내가 느끼는 감각이었다.


헤매고 다시 사고하는 과정이 재밌다.

그날 그 순간 느꼈던 감각을 기록한 업무 일지에도, 하루를 정리하며 적었던 일기장에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이 분명하게 기억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상황에서 헤매고, 새로운 방향을 다듬어 가기 위해 다시 ‘사고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나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혼란과 불안정함, 복잡함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니 혼란스러워진 결과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란한 상황에서 다시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 좋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심지어 그렇게 혼란스러워진 상황에서 여전히 새로운 답을 찾아 내진 못했다. 답을 찾아가기 위해 이번 주내내 평소보다 더 생각 회로를 가동했고, 이건 아마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다. 중요한 건 다시 엔트로피가 높아진 상태에서 즉, 무질서해진 상황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막연함마저 순간순간 즐기고 있는 나의 감각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되니 부작용도 따라왔다. 평소보다 생각 회로를 더 가동한다는 말은 머리를 더 많이 쓴다는 뜻이고, 에너지 소모량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영향으로 평소보다 에너지가 금방 바닥이 났다. 보통은 오후 업무를 끝내고 5시에 러닝을 하러 나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사실 운동은 운동하는 그 순간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까지가 제일 힘들다.


평소와 다르게 이번 주는 운동하러 나가기까지가 매우 힘이 들었다. 에너지 소모량이 급격하게 높아지니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 나갈 힘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러닝을 나가긴 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힘이 없어서 운동을 못하겠어 -> 그런데 운동을 하면 에너지가 다시 채워져, 활력이 되살아나’ 이 사고의 과정이 행동의 반복을 통해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서 게으름을 겨우 이겨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좋은 습관이란 ‘올바른 사고 과정’을 세워두고, 이 과정대로 ‘행동을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몸과 머리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주에 느꼈던 이 강렬한 감정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내 머릿속에 이 단어가 떠올랐다.



와비사비 wabi-sabi : 
영구적이지 않은 것과 불완전한 것의
아름다움에 관한 미학


와비(wabi)는 미완성, 사비(sabi)는 오래됨과 낡은 것이라는 의미를 합쳐서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본의 철학에서 유래된 일본어다. 와비사비의 철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이다.


무질서, 다시 혼란스러워진 상황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회피하던 시절도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했지만 그러한 순간들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주만큼은 내가 이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불완전한 것을 즐긴다는 것은 불완전함을 귀하게 여기는 와비사비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 나의 감정을 ‘와비사비’의 태도로 정의하고 나서, 그동안 적었던 일기들을 다시 한번 열어봤더니 어쩌면 나는 퇴사 후 지금까지 내내 와비사비를 실현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나는 또 이렇게 여태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벌이지 않았을 테니까.


불완전함과 혼란을 ‘즐기는 경지’를 유지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계속 즐기진 못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 즉 와비사비의 태도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해내고자 하는 일의 ‘지속성’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효율은 비효율에서 탄생하고, 안정은 불안정에서 탄생한다.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필요 조건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니 불완전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와비사비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완전함으로 가기 위한 필요 조건이 아닐까? 물론 인생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절대적일 수 없는 개념이다. 그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상대적인 조건 속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감을 추구'하자는 의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더 완전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완전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와비사비의 태도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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