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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천직을 못 찾은 게 아니라

적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 이번 주 나를 강타한 한 장면

이번 주 유퀴즈에 출연한 박지환 배우의 영상을 보고 난 이후부터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한 장면이 있었다.

출처 : 디글


범죄도시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18년의 무명 시절을 보낸 박지환 배우는 가끔 산에 올라가면 큰 바위에다가 빌고, 큰 나무를 끌어안고 빌고, 절이 보이면 절에 들어가서 삼천배를 올리고 나올 정도로 자신의 간절함을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그렇게 간절하게 빌고 빌었던 것은 ‘연기를 잘하는 것’ 즉, ‘일을 더 잘 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그 간절함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내 머릿속을 계속 떠나질 않았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박지환 배우의 간절함을 통해 나의 간절함을 되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나는 일을 억지로 하기보다, 즐기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박지환 배우처럼 오랜 시간 자신에 일에 몰입하고, 즐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의 간절함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다른 무엇도 다 필요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내뿜는 아우라에 동기부여를 느끼는 동시에 난 왜 저 정도 몰입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까 하는 그런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러움의 방증이다.

출처 : tvN






- 천직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그 부러움이 현재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게 맞을까?’하는 질문까지 파고들게 하였다. 여태까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질문이었지만, 내가 아직 물아일체한 몰입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아마 ‘천직’을 찾지 못해서는 아닐까? 하는 결론까지 다 달랐다. 그만큼 나도 일에 있어서 ‘몰입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간절함에 현재 상태에서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기로 했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유튜브에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에 대해 계속 검색하고, 다양한 영상들을 찾아봤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김경일 교수의 영상이었다. 김경일 교수의 영상을 찾아보다가 가장 내용 정리가 잘 되어있는 2가지 영상에서 뽑아낸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대부분은 ‘적성에 맞는 일’에 대해서 ‘좋아한다’의 방향으로만 접근하지만, 김경일 교수는 ‘좋아한다 + 까탈스러움’의 방향으로 접근해야 함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김경일 교수는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학 동기들이 ‘경일이가 못 먹으면 상한 음식이다’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사실 나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다. 거의 동일한 식단으로 1년 넘게 먹고 있는데 늘 맛있다..!) 그렇다면 김경일 교수는 ‘셰프’라는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 음식에 대한 ‘까탈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맛이 조금만 달라져도 ‘까탈’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출처 : 사피엔스 스튜디오

2) 좋아하는 일을 찾기 전에 어떤 유형의 인간에 속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유형에 대한 섬세한 연구는 조금 더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 이 2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 Fit theorist :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만 열정이 발생하는 타입

어느 날 야구를 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축구로 바꾸고, 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농구로 바꿔보는 아예 영역 자체를 드라마틱 하게 바꾸면서 딱 맞는 적성을 찾아가는 타입이다.


- Develop theorist :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몰두하면서 열정이 점점 더 자라나는 타입

일단 야구를 시작했으면 투수를 해보고, 투수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 야구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포수를 해보고, 또 이게 아닌 것 같으면 내야수, 또 이게 아니면 그냥 야구 코치 등등 그 영역 안에서 디벨롭시켜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타입이다.


fit theorist들은 대부분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일의 영역이 창조적인 것과 직업이 창조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출처 : 소확성

예를 들어 ‘요리’라는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요리하는 셰프가 있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도 있고, 한 가지 요리로 뚝심 있게 가는 요리사도 존재한다. 


즉,  ‘요리’라는 한 가지 영역 속에서도 창조적인 것과 지속적인 것이 있으니 창조라는 개념을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의 영역을 내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fit인지 Develop인지를 판단해 봐야 한다.






- 그래서 나의 천직은 뭐야?

위의 영상들을 보면서 내가 까탈스럽게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인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해봤다. 예를 들어 퇴사하고, 짧은 기간 동안 월급 이상의 돈을 벌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일을 지속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돈은 벌었지만 내 천성과 맞지 않음을 느끼고, 미련 없이 다른 일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들이 Fit theorist처럼 아예 다른 영역으로의 피벗이 아니라, 비슷한 영역 안에서 일하는 방향을 바꾸거나, 확장을 하거나, 나의 사고방식을 바꿔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등 전형적인 Develop theorist의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게 아니라고 판단되는 순간 미련 없이 손을 떼고, 새롭게 도전하는 Fit theorist의 면모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커리어 여정을 보면 전형적인 Develop theorist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걸 Develop theorist의 유형이라서 그렇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라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끊어내는 나'라는 사람이 이 영역 자체를 과감하게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 영역이 나의 천직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시원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나의 천직을 찾아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 천직을 못 찾은 게 아니라 적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내가 계속 영상을 찾고, 시청면서 영상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그래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뭘까, 내가 잘하는 건 뭘까’ 언어적 표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댓글들을 보다 보니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하는 행위의 적확한 단어나 문장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 많은 일들을 해보지 않았거나, 경험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 질문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질문에 해당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고, 일에 대한 건강한 고민들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뚜렷하게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보통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라고 하면 사회가 정의한 단어 체계 안에서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문장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들은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단어의 탄생보다 더 빠르다.


예를 들어 유튜브가 나오고, 이게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서야 ‘유튜버’라는 단어가 보편화된 것처럼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약속한 언어 체계 안에서 내 행위를 맞추려고 하다 보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천직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유튜버라는 직업도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영상을 만드는 게 좋아서 유튜버가 된 사람도 있지만 그냥 물건을 사재끼는 게 좋아서 이걸 자랑하고 싶어서 유튜브를 했는데 이 행위 자체가 돈을 벌어다 주는 직업이 되는 케이스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장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장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출처 : 소확성






- 그런데 천직을 꼭 찾아야 하나?

과거에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꼭 천직을 찾아야 할까?’라는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은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천직은 꼭 찾아야 한다.


1) 평균 수명 100세가 넘어가는 시대니까 천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길고 긴 인생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사려면 그러니까 '삶의 질'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그저 일만 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과 생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2) 운이 아주 나빠서 내일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으니 천직을 찾아야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열심히 사는 것이 부질없다고 했던 이들이 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에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 누군가의 충만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련하게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과 시간을 충분히 보낸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사람, 장소, 물건, 음식, 일 등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만만치 않은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일하는 시간의 질’부터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되새김하게 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이 단순한 한 줄에 정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직 천직을 찾지 못했다면, 내가 좋아하는 행위에 대한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일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사회가 정의한 언어 체계 안에서 내 천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오늘도 나의 꿈의 근처에서 천직을 찾아 헤매고 있다.

빈지노 Always a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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