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업무상의 영감을 받고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오랜만에 오전부터 밖에 나가는 길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왔음에도 퇴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이후부터 늘 익숙했던 출근길의 시간과 풍경, 느낌이 모두 나에게 ‘지겨움’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새로웠던 것은 ‘일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내내 ‘내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하고 싶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마주한 사람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계속해서 그들을 관찰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과 또 다른 이들, 그리고 그들과 나 사이에 아주 사소한 것 하나쯤은 공통점과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조금씩 알아차렸다.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그들과 나의 ‘차이점’을 관찰하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차이점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과 공통점의 교집합’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더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되겠다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을 할 때와 일을 하지 않을 때 성격이 꽤 많이 달라지는 편인 것 같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런데 일을 할 땐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한다.
한창 열정적으로 일했던 20대 때는 꼭 입점시켜야 하는 브랜드사를 데려오기 위해 강남에서 인천까지 대중교통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쳐들어 간 적도 있다. 그렇게 콧대 높던 브랜드사 대표도 강추위에 맞서서 혼자 달려온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MD를 보고, 모른척할 수가 없었는지 내 제안에 손을 들어줬다. 돌이켜보면 ‘일’이라는 것이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꺼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때가 많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여태까지 일을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일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경청을 했고, 옆 사람들의 대화를 살짝 엿듣기도 했다. 그렇게 같은 장소에 3시간을 함께 있다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기록했던 노트를 펼쳐봤다. 노트 속에서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 문장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날 만난 그들은 은연중에 ‘새로운 세계’라는 말을 꽤 많이 반복했다. 굳이 애써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이 스스로 돈을 벌고, 계속해서 공부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맛봤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세계는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했고, 새로운 행동을 하게끔 했으며, 새로운 결과를 맛보게 했다. 그러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관찰자의 시선에서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다른 이들(인구통계학적으로는 비슷한 부류에 속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 여부로 나뉘는 사람들) 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와 파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뚜렷해졌다.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거나, 욕구를 더 키워주면 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형태가 절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러니까 한 발짝만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정리하고 나서, 관찰자로서 나의 시선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로 다시 돌려보았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매일 운동하는 일상, 매일 읽고 쓰는 일상, 매일 생각하고 기획하는 일상..내 일을 더 잘 하고 싶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으니까, 내가 시도하고, 꾸준히 하고 있는 이 모든 게 ‘새로운 세계’였다.
세계관이란?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피상의 생각도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이다.
- 출처 : 나무위키
‘그냥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의 차이는 ‘삶의 질’에 달려있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측정하기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물질적이고, 정량적인 것도 삶의 질에 필요한 요소지만 그렇다고, 오직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삶을 질을 높일 수가 없다. 결국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각자의 ‘세계관’이 확장되어야 한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나의 생각을 바꿔주고, 나의 행동을 바꿔주어 내 인생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와 책을 꾸준히 읽었을 때, 글을 쓰지 않았을 때와 꾸준히 글을 썼을 때, 조직 밖에서 일해보지 않았던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을 때와 그 두려움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전과 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을 때 알게 되는 느낌과 깨달음들이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라는 감각을 더욱더 선명하게 해주었다.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고, 세계관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문득 궁금하다. 1년 뒤에 나는 또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