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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May 30. 2024

뭐가 되고 싶지 않다

자우림 <이카루스>


1.

'뭐가 될 줄 알았다' 저 노래 가사처럼 20대에는 내가 ‘뭐가 될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난 남들보다 뭐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비교적 뚜렷한 사람이었으니까. 



2.

‘뭐가 되고 싶었다’ 30대 초반에는 격렬하게 뭔가가 되고 싶은데 뭐가 되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물론 이게 단순히 명사로 된 목표,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명사로 딱 떨어진 목표의 형태는 항상 뚜렷하게 가지고 살아왔다. 이 명사적 목표의 연장선상에서 그저 이것만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뭐가 되고 싶은데 도대체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3.

그러다가 퇴사를 했다. 구체적으로 내가 뭐가 되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무작정 퇴사를 하고 1년 10개월이 지났다. 이 시간 동안 ‘뭐가 되고 싶은지?’ 답을 찾았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사실 되고 싶은 무엇을 찾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냥 ‘내가 되자’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4.

‘뭐가 되고 싶지 않다’ 지금의 가장 솔직한 내 생각이다. 그냥 뭐가 되지 말자. ‘뭐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뭐가 되고 싶지 않다’가 새로 찾은 답이라면 답이다.



5.

언뜻 들으면 포기와 체념의 결론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연히 따지자면 그 반대의 의미다. 요즘 최진석 철학자의 신간 <건너가는 자>를 읽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핵심 개념으로 '뭐가 되고 싶지 않다'의 의미를 잠깐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건너가는 자>를 굳이 내 언어로 해석하자면 타인의 생각에 기대지 않고,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 정해진 틀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지 않은 사람.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 그래서 모호하고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이미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보려는 사람을 뜻한다.


이 책은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을 해석하는 내용으로, 반야심경에서 아주 핵심적인 개념이 ‘공’이다. 공에는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여기서 본질이란 '어떤 것을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게 해주는 성질'을 뜻한다. 세상을 ‘본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개념이 아주 중요하다. 


이게 무슨 말인지 책에서 가장 쉽게 설명한 예를 가져오자면, '의자'의 성질은 '앉음'이다. 그러니 의자를 의자이게 해주는 성질, 앉음이라는 성질이 있을 때 그것을 의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의자를 분해하면 어떨까? 등받이와 받침, 의자 다리를 하나하나 분해하면 결국 나사, 못, 막대 등으로 나뉘게 된다. 결국 이 자체를 의자라고 부를 수 없다. 의자는 나사, 못, 등받이, 받침이 서로 관계를 이룰 때 비로소 '의자'가 된다.



6.

그러니까 그 어떤 것도 ‘본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기들이 서로 ‘관계’하면서 쓰임과 정체성이 바뀐다는 말이고, 오직 그것이게 하는 성질, 본질을 고정해 두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계속해서 뭔가가 되려고 했던 것 또는 내가 나 자신이 되려고 했던 것. 이 모든 것이 ‘본질’로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어떤 고정된 본질을 만들어야 한다.



7.

그런데 1년 10개월 동안의 나를 관찰한 결과, ‘나’는 정말 입체적인 사람이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입체적이다. A라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A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B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B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C라는 상황을 만들고 싶으면 그냥 스스로 C가 되어버리면 된다. 물론 이렇게 사고하는 것에 대해 좋은 점도 있지만, 명백하게 불편한 점도 있다.



8.

불편한 점은 사회적으로 내가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거나 또는 뚜렷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소개할 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한 마디로 자신을 쉽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난 더 이상 회사원이고, 사업가고, MD고, 팀장이고, 대표고 뭐 이런 말로 나를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과 일 얘기를 하는 게 불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반드시 내가 뭐가 되어야 하니까. 뭐라도 하나 선택해서 나를 설명해야 하니까. 그냥 잠깐 뭐가 되면 되는데 그 잠깐의 불편함이 싫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릴 때도 많았다.



9.

그럼에도 뭐가 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의 좋은 점은,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측면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걸 얼마 전 읽었던 자우림의 인터뷰 속 언어를 빌리자면 ‘기괴한 행복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확하다.


온갖 괴로움과 귀찮음에 젖어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새 말도 안 되게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는 나. 뭐가 됐든 그 결과물을 보며 가끔은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감탄한 적도 있고, 반대로 ‘그럼 그렇지, 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하고 체념한 적도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을 반복하며 나는 계속해서 여전히 모호한 나에게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가는 것이 재밌다.



10.

생각해 보면 난 항상 이런 모호함과 함께하려고 했다. 뚜렷하게 정해진 필드에서 뭘 해나가는 것보다 모호하고 애매한 필드에서 스스로 재밌는 소꿉놀이하듯이 나만의 규칙도 정해 보고, 직업도 만들어보고, 새로운 시스템도 만들어보는 그런 행위 자체를 불안해하면서도 절대 놓지 않았다.



11.

이런 내가 모순적으로 자꾸 뭐가 되려고 하니, 그 생각이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던 것은 아닐까? 사실 모호함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안정감도 좋아한다. 안정감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 안정된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계속 모호함을 갈구하는 나는 내가 참 피곤하다.



12.

1년 뒤 나의 생각이 또 어떻게 변하고, 업데이트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현재 내 생각의 결론은 이러하다. 정말 격렬하게 ‘뭐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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