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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뼛속까지 한국사람

by Jiyoon L

김치



Kimchi


가을이면 산처럼 배추를 쌓아놓고 담그는 게 자연스러울 테지만, 이민으로 뼈가 굳은 사람은 김장이란 건 경험해 보지도 의미자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사실이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나라에서 살다 보면 사시사철 김치를 담글 수 있기에…


그래서인지 엄마와 할머니는 배춧값이 싸다고, 무가 싱싱하다고, 오랜만에 갓을 본다며 김치를 자주 담그셨다. 그대로 그걸 보고 배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김치 담그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 난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타지에 유학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 이미 나는 오랜 이민 생활에 삼시세끼 한식을 먹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던 사람이었는데도, 혼자 살기 시작할 때부터는 웬일인지 김치를 담갔다. 지금은 한인 사회가 너무나 발달이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때 당시 내가 자취하던 동네는 (한인인구가 꽤 되는 데도 불구하고) 밴쿠버 통틀어 한인마켓이 한두 군데뿐이었고 운 좋게 가장 큰 한인마켓 근처에 살았으나,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던 시절, 걸어서 30분은 가야 했던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하면 김치는 꼭 담가야 하는 일인 거 같아,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내 룸메이트는 그 편도 30분 거리를 이고 지고 김칫거리를 사 왔다.

그때 그 아이들에게 그 거리와 그 김치의 사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손을 아리게 파고드는 비닐 장바구니의 무게. 그 무게와 그 거리에 위로가 되던 죽이 잘 맞던 룸메이트와의 낄낄거림.


그렇게 이고 지고 온 김칫거리를 소금에 절이고, 뭔지 알지도 못하던 젓갈이며, 액젓, 고춧가루 넣고 버무려 완성을 한다. 그게 또 내가 기특해 손바닥만 한 그릇에 담아 주변에 돌린다. 그중에는 친구엄마도 있었다. 얼마나 웃겼을까… 고등학생애들이 맛이나 보시라며 가져온 손바닥만 한 그릇의 깍두기며 김치며…


그런 거 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라에 15살 16살짜리들만을 보낼 수 있었던 내 부모님의 심정을 알겠다. 김치 담가먹는 고등학생들이라니…

무슨 탈선이고 무슨 일탈을 하겠는가.

그때부터 난 아줌마 부심이 가득 찼던 아이였던 걸…


한식도 자주 안 먹던 아이들에게 그 고생을 해가며 담그던 김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인정할 순 없어도 뼛속까지 새겨진 한얼 이란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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