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프로그램이었던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콘서트 투어를 돌고, 자잘하게 여러 프로그램도 맡았다. 갈라콘서트가 끝나자마자 기획 및 제작진 예심을 시작으로 장장 10개월간 함께했는데, 이번에는 실력 있는 보컬 걸그룹을 만들어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첫 프로그램 이후 제대로 맡은 오리지널 프로그램이니 만큼, 마케터로서도 관여도가 높았다. 제작진들과 기획에 대해 논의도 많이 하고, 프로그램의 대략적인 컨셉만 있는 상태에서 여러 파트너사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미리 세팅해두어야 하는 음원발매, 투표, 디자인 등 여러 대행사들을 만나보고 비교해 보며 큰 그림을 제작진과 함께 짜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는 방송은 약 3개월 정도지만, 제작진과 스태프들은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이 프로그램에 쏟게 된다.
제작발표회를 준비하며 당일에 급하게 콘텐츠 촬영을 직접 하게 되기도 하고, 매일매일 이슈가 터지는 상황 속에서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을 찾아다녔다. 편성이 무려 화요일 밤 10시 반 늦은 시간이라 거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방송이 끝났고, 3개월 간 잠 못 자는 화요일을 보냈다. 그래도 이전에는 금요일 밤 편성이라 다음날이 주말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여유로웠는데 확실히 편성 시간대에 따라 마케터의 워라밸 (애초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마케터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작은 회사인 데다 디자이너가 없는 팀의 마케터는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파트너사 서비스 투표 페이지까지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디자이너+기획자+마케터의 역할을 모두 하는 잡부랄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많은 역할만큼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나름 5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게 조금은 익숙해졌다. 업계가 좁고 폐쇄적인 편이고, 이직도 잦은 편이라 그런지 이번 프로그램 하면서 전에 같이 일했던 좋아하는 선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전에 같이 일하며 많이 배웠던 기억이 있어 미팅하면서도 신기하고 의미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인턴이던 내가 성장해서 이제는 같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함이었다.
결승 1차전 녹화 때는 방청객분들이 오셨었다. 리허설부터 본 녹화까지 보며 가장 좋았던 곡은 윤종신 프로듀서의 곡 <오디션>이었는데, 가사에 담긴 '간절함'의 메시지가 특히나 와닿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떨려도 행복한 건 나의 선택이 맞았단 걸 믿어요"
리허설 때 들으면서도 울컥했는데, 이 일을 꿈꾸고 시작했던 나의 초심이 생각나서 더 울림이 컸다. 그때의 간절함을 일하다 보면 또 금방 잊게 되는 것 같은데, 다시 초심을 찾게 해주는 노래가 되었으면 했다.
나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누구든지 간절하게 바라는 일이 있었을 때,
간절하게 바랐던 일을 끝내 이뤄냈을 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노래랄까
이번 프로그램을 맡으면서는 확실히 제작진과 기획 단계부터 함께 붙어서 일하다 보니 다양한 일을 벌여봤다. SNS운영은 물론이고, 새로운 플랫폼인 틱톡/위버스도 혼자서 맡아서 했다. 포토이즘과 콜라보를 하면서 회사에 포토이즘 부스도 설치해 보고, 이벤트도 많이 진행했다. 디자인도 물론 다 내 몫이었다. 신경 쓸 게 정말 많았지만 나에게 많은 책임이 주어진 만큼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맡아서 해낼 때마다 계속 내 마케팅의 범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며,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설치해 둔 포토이즘 기기 한 편에 늘어나는 사진들을 보는 게 담당자의 보람이기도 했다. (물론 기기 오류가 생겼을 때 수리를 하는 것도 내 몫이라 회사 사람들이 포토이즘 매장 하나 차려도 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대망의 파이널 날, 날씨가 참 좋았다. 늘 녹화를 하던 일산 스튜디오에서 파이널을 하니까 공간이 익숙해서인지 실감이 덜 나긴 했다. 그냥 현장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촬영장 로비 건축물이 이 날은 좀 특별하게 느껴졌다.
Well done, good luck
나에게, 또 함께한 참가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파이널이 끝나고 쉴 틈 없이 다음날 바로 우승한 친구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돌아보면 사실 첫 프로그램 때만큼의 애정이나 열정은 아니었지만, 담당자인 나를 입덕시키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이 화제성이나 시청률이나 여러모로 아쉬웠던 점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각자에게, 그게 시청자가 되었든, 참가자가 되었든, 제작진과 모든 스태프들이 되었든
의미가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거라면 그동안 우리가 했던 노력들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