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짧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3월의 제주는 언제와도 참 좋다. 하이아웃풋클럽에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과 어쩌다보니 함께하게 되었는데, 새삼 퇴사하고 좋은 점 1위는 시간의 자유가 맞는 것 같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는 시간의 자유의 마음의 여유.
돌아보면 거의 매년 제주를 찾았었는데, 그 목적은 계속 바뀌었다. 작년 이맘때 혼자 떠난 제주는 프로그램 런칭 직전. '이때가 아니면 나를 위한 시간이 당분간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이틀 전에 비행기를 즉흥적으로 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떠났었다. 서울보다 조금 일찍 벚꽃이 피는 제주,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서귀포 시골 동네에서 좋아하는 게절을 만끽하며 오롯이 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2022년 8월, 퇴사와 졸업 이후 훌쩍 떠난 제주.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만으로 그동안의 고민을 모두 해결한다는 건 자만이기도 했다. 차도 없이 뚜벅이로 혼자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잔뜩 돌아다녔다. 8월의 제주는 햇빛이 종일 내리쬐는, 30도를 육박하는 여름이었지만 처음 맞이하는 혼자여행에서 모든 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가 내게 준 힘은 꽤 컸다. MBTI중 P가 92%로 압도적으로 높은 나는 언제나 즉흥성과 실행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시간을 오래 보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4번의 방송국을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종합편성채널과 연이 깊은 탓인지 4곳 중 3곳이 종합편성채널이다. 2022년은 3번째 케이블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9개월을 마치고 퇴사를 했던 시기였다. 너무 오랜 기간 최애 기업이었기 때문에 퇴사 직전까지도 사실 좋은 점만 보였다.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각종 재밌는 행사들이 많은 젊은 회사 등등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럼에도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성장'이었다. 어쩌면 계속 느끼고 있던 회사, 그리고 팀의 단점들이 마지막이 되어서야 객관적으로 보이게 된 느낌이랄까. 더 이상 이 팀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받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팀에 있으면서 더 크게 느꼈다. 계속 바뀌는 팀 구성, 의미없는 조직개편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계속 사람이 바뀌는 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생각보다 내가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사람만큼은.
퇴사를 고민하던 마지막 2주에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분명해졌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길 원했다. 야근을 하고 주말에 나오더라도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마지막이 아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후련했다. 난 여기서 너무 재밌게 열심히 일했으니까.
좋아했던 회사를 부정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고, next step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하고 경험하기 전까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니까.
퇴사 이후 많은 가치가 바뀌는 걸 경험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회사로 갈 거라는 거.
언제나 그랬듯이 더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겠지
지금의 시기도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때 남겨뒀던 기록 중 일부. 실제로 퇴사 후 6개월간의 시간동안 '왜 방송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긴 고민의 시간을 거쳤고,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작정 떠났던 제주는 나에게 전환점이었고 힌트였다. 학교라는, 회사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그 선택은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느꼈던 시작이었다.
그렇게 점점 원했던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며,
결국 길을 찾았고,
방송국 마케터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