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의 의견은 다릅니다. OO님이 그동안 상담받으셨던 일, 지금처럼 병원에 오시는 일, 일기 쓰셨던 일 모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점심을 먹고, (영어 공부를 하다가 전화 영어 하고 앞머리 자르고 성당, 은행 들렸다가) 집에 오는 길, 문득 이제 곧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라니. 한 게 뭐가 있다고 밥을 또 먹냐. 밥만 축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공부-전화영어-미용실-성당-은행 그 어느 하나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시간 보내려고 한 것 같았다. 점심 먹고 거의 바로 저녁 먹는 것 같다는 느낌에 한심하게 느껴졌다.
근데도 왜 이렇게 하는 것도 없이 축 늘어지고, 우울하고,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할까. 입맛도 없다. 누군가와 같이 먹는 건 좋지만 혼자 먹는 건 더더욱 별로 먹고 싶지 않다. 누군가 음식을 해주는 정성이 고맙지만, 가끔은 내가 정성스럽게 해 준 음식을 먹어도 되나 싶어 몸 둘 바를 모르겠기도 하다.
요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 원데이클래스로 갔던 그림수업에서 2시간 동안 있으면서 최근 들어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이것저것 그리고 있다. 자기 전에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 클립에 올리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그렇게 생산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 것에 부끄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구는 힘들게 출근해서 돈 벌고 퇴근했는데, 나는 그림을 보여줄 때 그동안 그림만 그린 것 같아서 부끄럽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해서.
최근에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그림책을 하나 선물해 줬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 저는 이 책을 쓰며 스스로에게 종종 묻곤 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 작업을 하는 걸까? 그러나 말이 말하듯 "인생은 일단 부딪혀 보는 것"입니다. '
와닿았다. 내가 재능도 없는 그림을 왜 그리고 있을까. 이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귀여워해줬으면 좋겠는 마음. 언젠가 이모티콘 작가로 성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 신경 쓰지 않고) 선물도 펑펑 주는 모습을 생각한다. 도대체 이걸 왜 그리니 하면, '일단 해보게. 내가 이모티콘 작가로 성공할지 어떻게 알아? '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농담 30 진담 70이다.
그런 허황된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못한 오늘의 루틴 '영작연습-러닝-점심영어공부-전화영어-미용실-성당-은행-전화영어 2-저녁-그림'이 떳떳하지 못하다. 유명한 그림책 작가님처럼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도전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냥 일상인 것 같다.
엄마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주신다. 엄마는 서른 살 넘은 딸이 원하는 음식들을 알아서 차려먹었으면 하신다며 뭐라고 하셨었다. 내가 요즘 마음이 힘든 걸 알고 엄마는 그런 말 하는 횟수도 줄이셨다. 뭐 먹고 싶어? 체할 것 같으면 무리해서 먹지 말라고 오히려 말씀하신다. (예전 엄마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런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오늘은 저녁 먹으러 거실로 나가기가 싫었다. 밥만 축내는 사람도 아니고, 계속 방에서 뭐 하다가 밥 먹을 때만 나와서 밥 먹고 들어가는지, 내가 봐도 꼴 보기가 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