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왜 살아 ? 11화

왜 살아 10. 마지막 이야기

by 우주먼지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 찰리 맥커시 글 그림)


오늘 나의 근무지가 결정이 났다. 내가 지원했던 대로 집에서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도 엄청 기쁘지는 않았다. 지금 학교에 남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이었지, 새로운 학교로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었기 때문에.


나는 7년 차 교사이다. 교사가 되기로 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고등학교 때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때 누구에게라도 너무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공부 안 해도 큰일 안나. 공부 잘하나 못하나 너를 좋아할 거야. 너를 사랑해. 대학을 못 가도 괜찮아.'


물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나름 잘 커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마음이 힘든 이유는, 충분히 사랑받아야 하는 시기에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런 힘듦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나고,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와의 추억이 힘이 조금이나마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나는 부모님의 케어를 받지 못해 애정 결핍이 공격성으로 나타난 학생의 담임을 하며 여러모로 힘이 들 었었다. 진심으로 대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한 해였다. 종업식을 했는데도 그 친구가 자주 떠오른다. 오늘 (지긋지긋했던 이 ) 학교를 떠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맞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굴 때리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작년에 이 아이를 비롯해 학교 일과 나의 문제로 내 우울이 깊어진다고 느껴질 때 내 주변에서는 나를 너무 걱정했다. '제발, 네 몸 좀 먼저 챙겨. 너 아니어도 애들 다 잘 지내. 그냥 휴직해. 큰일 날 것 같아. 네가 휴직한다고 애들 어떻게 안돼. 그거 너무 너를 과대평가하는 거야. 너 없이도 세상 잘 돌아가.' 사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없어도 애들을 생각보다 훨씬 잘 크고, 꼭 내가 그들의 담임이어서 애들이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사실은 내가 우울감이 심했을 때도 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 이유는 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듣고 싶었던 말을 애들한테 해주고 있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한테 해주는 말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의 나와 지금의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다. 환경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모든 게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들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 마치 어린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고, 거기서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았던 것 같다.


애정 결핍으로 공격성을 보였던 아이는 반에서 의자를 던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날에 출근할 때면, 나는 또 그런 일이 있어서 혹시나 우리 반의 다른 아이가 다칠 위기에 처하면 내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줄 용기가 있는 선생님이길,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다짐하면서 출근했다. 숙박형 체험학습을 가던 버스 안에서는 혹시 불의의 사고가 나면, 내가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천생 선생님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방학이 오면 더 마음과 몸이 힘들다. 자꾸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지만 내 존재를 증명해 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브런치에 글도 쓰는 것 같고, 그림도 그리는 것 같고, 자꾸 기록을 남겨놓으려고 한다.


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은 이전부터 꽤나 많이 했던 생각이다. 올해는 유독 그 질문의 깊이가 심해져 자살에 대해 생각했었다. 이전에는 내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살까지 가지 않고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살아갔으면 해서'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괜찮아. 좋아. 잘했다. 충분해. 멋있다.'라고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다. 공부를 잘해서나 운동을 잘해서 괜찮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훌륭해서 멋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정말 괜찮고 잘하고 있고 멋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한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내 말을 믿지 않겠지. 아이들이 실망하겠지 이 생각으로 내 속마음에 드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차단하게 도와줬다.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히려 아이들 덕분인 것이다.


' 왜 살아? 왜 살아야 하죠?'라고 아이들이 내게 물으면, ' 나는 당연히 살아야지. 사는데 이유는 없어. 그냥 사는 거야. '라고 단호하게 말해줄 것이다. 이 전제에 대해서는 의심을 1도 하지 말라고. 힘들어도 산다는 걸 전제하고! 어떻게 하면 덜 힘들지, 편해질지, 즐겁게 살지 고민해 보자. 같이 고민해 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전에 나부터 잘 살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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